아름다움을 만드는 눈물겨운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여유롭게 호수를 유영하는 백조의 바쁜 발놀림,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발레리나의 상처투성이 발. 최선을 다해 아름다워지는 이야기는 때때로 경이롭다.
코스프레도 마찬가지다. 캐릭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캐릭터 연구부터 의상 및 소품 제작, 사진 촬영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코스튬 플레이어들은 이 과정을 거쳐 누구보다 치밀하게 아름다워진다. 스파이럴 캣츠의 '타샤' 오고은도 그렇다.
게임 회사에서 근무했던 오고은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코스프레 산업에 뛰어들었다. 해외에 비해 미비한 한국의 시장. 오고은은 개척자나 다름 없었고, 정비되지 않은 길은 가시밭길과 같았다.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오고은은 천천히 나아갔다. 그리고 빛을 만났다.
스파이럴 캣츠는 게임 및 e스포츠 산업의 대표적인 프로 코스프레팀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최고라는 위치에 따라오는 고충도 있다. 선두 주자가 갖는 책임감, 기대에 대한 부담감 등이다. 어깨가 무겁지만 오고은은 꿋꿋이 나아간다. 그 감정들을 원동력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백조와 발레리나의 발을 보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오고은을 만났다. 화려한 의상, 정교한 소품을 두르지 않은 모습. 무대에 오르기 위해 발놀림 하는 그 시간이었다.
◆'타샤' 오고은이 되기까지
오고은은 부모님 손을 잡고 방문한 서울 국제만화 페스티별 행사장에서 처음 코스프레를 접했다.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감각. 오고은은 그 때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의상 제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코스튬 플레이어 오고은은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첫 발을 내딛었다. 재봉틀을 꺼내든 어머니와 사진사를 자처한 아버지, 의상 제작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동생들. 조금은 낯선 풍경이 오고은의 꿈을 키워줬고, 직업으로 삼겠다는 도전에 힘을 실어줬다.
"이 직업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협력해 주셨어요. '너가 어디가서 실수할 일은 없을 테니 알아서 잘 해 봐'라고 풀어주셨죠. 지금도 친척분들이 제 사진을 보면서 '이 의상은 노출이 심하지 않아?'라고 하면 어머니가 '이건 캐릭터를 해석하기 위한 것이니까 노출로 보면 안 된다'고 얘기하세요. 항상 믿어주시니 감사하죠."
처음부터 프로 코스프레팀으로 활동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게임사에 취직했다. 크런치 모드, 야근에 시달리기를 3년. 바쁜 일상 속에서 하고 싶은 일에 등 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때마침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일'이라는 글귀를 접했다. 오고은은 그 때, 코스프레의 길로 들어섰다.
"그 때 당시에 미국에서 프로 코스프레팀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은 의상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었죠. 한국은 코스프레 의상을 만들기 굉장히 좋은 곳이에요. 동대문에 원단 상가, 가발 상가, 소품 재료 상가가 모여 있어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죠. 제작자들의 실력도 노련하고요. 한국의 코스프레 시장이 매니아 층에서만 활성화 돼있었는데 스파이럴 캣츠는 이것을 상업적으로 끌어오고자 했어요."
오고은은 게임사에 있었을 때부터 합을 맞춰온 김태식 대표와 함께 스파이럴 캣츠를 키워 나갔다. 초창기 1년에 2-300개 씩의 작품을 냈다니, 오고은이 그간의 행보를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요약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나의 코스프레가 완성되기까지
현장에서 만나는 스파이럴 캣츠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화려한 의상과 정교한 소품, 자신만만한 표정은 마음을 매혹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시선이 달라진다. 아름다움을 쉽게 얻을 수 없듯이 코스프레 의상 또한 피나는 노력 속에서 탄생한다.
"코스프레 의상 의뢰를 받으면 우선 캐릭터 일러스트를 보고 굉장히 오래 회의를 해요. 전체 제작 시간의 30%가 회의라고 보시면 돼요. 캐릭터를 도식화해서 특이성, 의상의 원단 등을 체크하죠. 도식화가 완료되면 일부 작업을 수주삽에게 맡기고, 저희는 모델에 맞춰 색감과 핏을 조절해요. 그나마 의상은 간단한 편이죠."
"소품은 에바(EVA)라는 소재를 많이 사용해 제작해요. 도면을 만들고 붙여서 겉면에 아크릴 물감으로 도색하고, 강화제를 만들어 완성하죠. 그 다음에 신발과 가발을 구매해서 튜닝 하고요. 각 캐릭터에 어울리는 표정과 포즈를 연구하면 사진 촬영에 들어가요. 촬영도 보정도 만만치 않죠. 한 장 보정하는데 짧으면 1시간, 길면 3시간이 소요되니까요."
의상 한 개의 평균 제작 기간은 3주에서 4주 정도다.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된 작품은 스타크래프트2의 캐리건이라고. 3-4주 동안 많은 인원이 잠을 거의 못 자는 상태로 작업했는데, 정상적인 일정이라면 3-4개월이 걸릴 일이었다고 한다.
스파이럴 캣츠는 퀄리티에 대한 차별성과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해 전체 의상의 7-80%를 자체 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고은은 제작의 히로인이다. 한 두 개 작품을 빼놓고는 모든 제작에 참여했을 정도라고.
오고은과 스파이럴 캣츠는 이후에도 많은 코스프레 작품을 소개할 것이다. 그 때마다 아름다운 외형 안에 담긴 노력을 함께 읽어내면 좋을 것 같다.
◆코스튬 플레이어로 산다는 것
한국은 코스프레 산업이 굉장히 협소하다. 최근 들어 코스튬 플레이어, 프로 코스프레팀이 증가하면서 성장 궤도에 올라섰으나 여전히 일부 매니아층의 비생산적인 취미라는 악평에 몸살을 앓는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 코스프레팀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오고은도 코스프레와 코스튬 플레이어에게 쏟아지는 편견에 대해 멈춰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코스프레가 게임 산업에 기생한다'고 보는 시선과 노출에 대한 이야기다.
"코스프레를 게임 마케팅을 돕는 보조 수단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부 나쁘게 보시는 분들은 코스프레가 게임 산업이 발전하는 것에 기생하고 있다고 하시는데요. 코스프레는 게임 마케팅에 도움이 되고, 상생할 수 있는 수단이예요. 게임 코스프레를 보고 게임을 좋아하게 되는 분들도 계시고요. 함께 윈윈하면서 성장해나가는 것이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생이 아니라 공생으로요."
"또 노출이 있는 코스프레에 대해서 '노출로 눈길을 끌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코스프레의 노출은 해당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 활용하는 수단일 뿐이지 주 목적은 아니예요. 그저 캐릭터의 재현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오고은은 현장의 열악함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특히 프로 코스프레팀 및 일반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이용할 수 있는 탈의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실 상황이 열악할 때가 힘들어요. 대행사나 게임사에서 알아주셨으면 좋겠는 것이 대기실을 만들어주실 때, 돗자리가 깔려 있거나 탁자나 의자가 있으면 의상을 갈아입을 때 정 말 큰 도움이 돼요. 정말 열악한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굉장히 서러워요. 거울 하나, 선풍기 하나 없는 곳에선 비참한 기분이 들죠. 반면 호텔이나 VIP 대기실을 내주는 행사를 가면 고맙고, 더 열의적으로 하게 되고요. 행사 초기 때보다는 많이 개선됐지만 조금 더 신경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또 행사장에서 일반 코스튬 플레이어분들이 이용하실 수 있는 탈의실을 마련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게임 행사에서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짐 보관과 탈의실이거든요. 이 부분만 개선되도 참여도가 확 늘어날 거예요. 현재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상황이 종종 강제되곤 해요. 이건 일반 관람객분들께도 민폐고, 코스프레 이미지 자체에도 해가 되거든요. 개선되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 프로 코스프레팀이 많아지고, 외부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장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나아가야 할 길은 여전히 많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스파이럴 캣츠와 오고은은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방향성과 시도가 코스프레 이미지에 누를 끼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신념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영웅을 따라하는 영웅들. 그들의 아름다움에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