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오승주는 '세최폭(세계 최고의 챔피언 폭)'이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떨친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였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2016 스프링에서 41세트에 출전하는 동안 23개의 챔피언을 사용했으니 이와 같은 별명이 붙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승주의 도전 정신은 이 때부터 어렴풋한 형태를 드러냈다. 새로운 챔피언을 연구하고 연습하고, 실전에 꺼내드는 과감함. 결코 물렁하지 않았던 그 패기가 오승주의 존재감을 설명했다.
형태만 느껴졌던 도전 정신은 오승주를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해설자로 만났을 때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선수, 플레잉 코치, 거기에 해설자까지. 자신의 모든 가능성에 도전하는 오승주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누군가는 오승주를 보고 '발만 담그다 빼는 것 아니냐'고 섣불리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발을 담글 때까지의 무수한 고민을 들어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의 오승주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세최폭'에 이어 '세최잡(job)'을 노리는 도전자 오승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최폭' 오승주의 속 이야기
"발버둥 친 것이었죠." 오승주는 '세최폭'이라 불렸던 시기를 발버둥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성적으로 드러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승리하기 위해 자신만의 승리 공식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오승주는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분명히 다른 팀들에 비해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니까 변수라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또 개인적으로 이슈를 만들어 인지도를 쌓는 것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고요. 챔피언 폭도 넓고 승리도 했다면 좋았을텐데 제 실력이 조금 못 미쳤죠."
물론 욕심에 취해 내지른 것은 아니었다. 오승주는 팀 내부적으로 연구와 연습, 검증을 마친 후에야 새로운 챔피언을 실전에 내놓았다. 자르반 4세, 벨코즈, 아리, 킨드레드 등 모든 챔피언이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
"패치노트나 솔로 랭크에서 다른 사람들이 활용하는 챔피언을 보고 영감을 얻어요. 그리고 솔로 랭크에서 연습해 본 뒤 감독님께 말씀 드리죠. '이 챔피언 상대로 이 것이 괜찮은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요. 감독님까지 납득하시면 연습 경기에서 써보고, 거기에서도 성적이 좋으면 대회 때 사용해요. 상당히 체계적이었어요."
소소한 얘기도 오갔다. 오승주는 킨드레드와 아리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참 아쉬웠다고 한다. 킨드레드의 경우 룰루, 빅토르 카운터로 연습 경기 성적이 상당히 괜찮았는데 실전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고. 아리는 녹턴, 말파이트, 리산드라 등과 함께 돌진 조합으로 요긴하게 사용했는데 대회에서 라인전을 지는 바람에 조합의 힘을 보여줄 새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오승주의 회상 끄트머리마다 붙는 '내 실력이 아쉬웠다'는 말. 이 말에서 전해지는 마음이 오승주의 선택을 떠올리게 했다. 플레잉 코치를 겸하고, 끝내 은퇴를 결심했던 순간들이 말이다. 물론 오승주는 그 시절, 상상 이상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LoL 선수에서 배틀그라운드 해설자가 되기까지
오승주는 감독의 권유로 코치직을 맡았지만 건강 문제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잠도 못 자고, 헛구역질을 연발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그 때부터 은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잠깐 선수로 복귀했지만 '그만 해야겠다. 더 이상 LoL 선수로서의 메리트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10월, 끝내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원 없이 해봤으니까요. 다 지긴 했지만 게임도 많이 했고요. 만약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수를 할 것이냐'라고 물으면 전 할 거예요. 제 이미지를 만든 것만 해도 만족하니까요."
은퇴 후 1년 6개월. 오승주는 스포티비게임즈가 진행하는 배틀그라운드 리그 워페어 마스터즈 시리즈(이하 PWM)의 해설로 깜짝 등장했다. 나이스게임티비에서 LoL 클럽 시리즈, 배틀그라운드 스크림을 해설하다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해설 전에 선수를 준비했다던 오승주는 자신만의 해설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처음엔 배틀그라운드 선수를 준비했었어요. 팀을 꾸려 APL(아프리카TV PUBG 리그) 예선에 출전하기도 했고요. 3위까지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었는데 4위를 했어요. 본격적으로 준비하던 와중에 해설 제의가 들어와 도전하게 됐죠."
"제가 갖고 있는 게임 경험을 살리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더 게임을 많이 했고요. 나랑 같이 연습 경기를 하던 선수들을 해설하는 것이다 보니 어떤 생각으로 플레이하는 것인지 눈에 보였어요. 저 또한 선수들과 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으니 왜 저런 플레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요. 그런데 해설을 할수록 갖고 있는 정보들을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금은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있죠."
첫 PWM 중계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오승주는 더 나은 해설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고 있다. 말을 더듬는 것부터 시작해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문제까지. 하나씩, 꼼꼼히 고쳐 볼 생각이다. "해설이 잘 맞는다"는 오승주는 '클템' 이현우 해설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뒀다. 갈 길은 꽤 멀겠지만 오승주의 도전은 어딘가 기대가 된다.
◆'고민 많은 즐겜러' 오승주가 도전자들에게
오승주는 자기 자신을 '고민 많은 즐겜러'라고 표현했다. 고민도 많고, 오지랖도 넓어서 이것 저것 신경 쓰고 걱정하는 타입이라고. 그러면서 결국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즐겜러'라는 것이다. 이는 "해볼 수 있는 것은 해보자. 해서 나쁠 것이 뭐 있겠냐"는 오승주의 인생관과도 연결된다.
오승주의 도전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일임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LoL 프로 게이머 또한 재미있고, 자신이 그만큼의 실력이 있기에 도전한 것이었다. 오승주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객관화하는 것이 도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오승주가 프로 게이머가 된 이유도 자신에게 솔직했기 때문이다.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뚜렷한 계획과 목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오승주는 '프로 게이이머가 돼서 어떻게 할 것이다'란 목표를 세웠고, 게임단의 테스트 일정을 얼추 파악해 입단 계획을 잡았다. 또 프로 게이머가 된 미래의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대리 게임, 욕설 등과 거리를 뒀다. 프로 게이머로 성공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승주는 프로 게이머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라고. 직접적인 재능이 없는 일을 하고 싶다면, 그를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할 수 있는지 자문하라고 말한다. 노력도 재능이라는 오승주는 "목표 의식과 욕심도 있어야 해요. 내가 왜 노력해야 하는지를 알면 힘이 생기니까요"라고 덧붙였다.
'고민 많은 즐겜러'이자 도전자인 오승주는 중등 수학 선생님이란 독특한 꿈도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수학에 대한 자신의 흥미와 재능, 성격, 목표를 구체화 한 꿈이다. 오승주는 "배그 해설로 만날지, 선수로 만날지, 선생님으로 만날지 모르겠어요. 저는 항상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한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눈 오승주라서 그 말이 진심으로 와닿았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패러글라이딩에 비유하면 꼭 맞을까.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 공중에 뛰어드는 도전자들에게 오승주의 철학은 꽤 탄탄한 동아줄이 된다. 자신을 돌아보고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질 것. 조금은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