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데뷔 10주년을 맞은 방송가 사람들을 수소문 했는데요. e스포츠 역사가 정말 길어지긴 했나 봅니다. 대부분의 방송 관계자들이 10년을 훌쩍 넘게 e스포츠를 지켜 오셨더군요. 하지만 어떻게든 찾아내겠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데뷔 시기를 확인, 드디어 2008년 데뷔한 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분은 데일리e스포츠와 긴 인연을 맺고 있었던 분이었는데요. 카트라이더와 던전앤파이터를 넘나들며 데일리e스포츠에 전문가 칼럼을 연재해 주셨던 전천후 해설 위원 정준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의 10년은 참 한적하면서도 치열했고 즐거우면서도 힘들었고 행복하면서도 또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해설 위원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주며 10년 동안 e스포츠를 지켜왔던 정준 해설 위원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Q 우선 독자 여러분들께 자기 소개 부탁 드려요.
A 안녕하세요. 2008년 던전앤파이터 해설자로 정식 데뷔해 데일리e스포츠와 생일이 같은 정준 해설 위원입니다. 10주년 기획 인터뷰를 하게 되다니 정말 영광이네요.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니 진짜 신기합니다.
Q 1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내셨다고 생각하시나요.
A 해냈다는 거창한 말은 어울리지 않아요. 저는 그냥 '흘러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일단 운이 정말 좋았어요. 10년 넘게 사랑 받는 게임의 해설자다 보니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해설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던전앤파이터와 카트라이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웃음).
게임도 잘 만났지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한번 더 들 때가 있었죠. 던전앤파이터랑 카트라이더 모두 긴 시간 휴식기를 가졌을 때가 있었잖아요. 그때는 저 역시 걱정이 됐는데 통장 잔고가 비어갈 때쯤 행사 하나가 들어오고 힘들어 질 때쯤 일이 하나 들어오더라고요(웃음). 그때 생각했죠. 해설자를 하라는 하늘의 계시구나.
Q 처음에는 해설자를 10년이나 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셨을 것 같아요.
A 기자님도 11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으셨잖아요(웃음). 처음에는 선수를 하면서 재미로 해설을 해본 것이 시작이었어요. 말 그대로 그냥 해본 거죠. 이후 게이머를 그만 두고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잘 안됐어요. 그래서 고민하도 있던 찰나 던전앤파이터 담당 피디님이 예전에 해본 적이 있으니 정식으로 해설자로 합류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이미 유학이라는 계획이 날아간 후라서 깊게 고민할 시간도 마음도 없었어요. 거의 생각 안하고 하겠다고 답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잠깐만 하다가 내 할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하루, 이틀 쌓이다 보니 이렇게 10년차 해설자가 됐어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 일이 너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힘들어도 이렇게 계속 하고 있죠.
Q 던전앤파이터와 카트라이더 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리그를 하잖아요. 비결이 있을까요?
A 현실적인 비결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포장된 비결을 원하시나요(웃음)? 그래도 10주년 특집 인터뷰니 포장된 비결을 말씀 드리면 위기가 닥쳤을 때 잘 대처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리그나 행사를 진행할 때 문제가 생겨서 시간을 때우거나 문제에 대해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에게 브리핑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다행히 제가 말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거든요(웃음).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들을 해결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찾아 주시는 것 같아요.
현실적인 비결은 다들 아는 그거입니다(웃음). 제 입으로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Q 해설자도 다양한 유형이 있잖아요. 10년 동안 정준은 어떤 해설자로 성장했을까요?
A 전 천재형도 노력형도 아닌 것 같아요. (김)정민이 형은 정말 열심히 노력해요. 옆에서 보면 놀라울 정도거든요. 저는 일이 끝난 뒤에는 신나게 놀아야 한다는 주의에요(웃음). 그래야 다시 일할 힘을 얻거든요.
물론 노력도 하죠. 저도 무식하게 요령 없이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하나는 잊지 않죠. 항상 재미있게 하자, 내가 즐기지 못하면 듣는 상대도 즐기지 못한다, 항상 노력도 행복한 만큼 하자, 이런 생각들로 일을 해나가요. 그래서 10년 동안 지치지 않고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정준 해설 위원과 데일리e스포츠는 칼럼으로 인연을 맺었죠.
A 처음 칼럼 제안을 받았을 때 깜짝 놀랐어요. 글을 써 본적도 없는 저에게 이런 제안이 왔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처음에는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Q 글을 너무 잘 쓰시던데요. 수정할 것이 거의 없었어요.
A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해요. 그냥 제가 아는 것, 좋아하는 것이니 생각나는 대로 쓰자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소재가 고갈되고 쓴 이야기를 또 쓰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글 쓸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 드려요.
Q 칼럼 덕분에 예언가가 댔다면서요.
A 한 3년 전? 한 칼럼에서 제가 김승태를 언급하면서 '빅3'를 위협할 선수라고 적었더라고요. 한 팬이 커뮤니티에 그 글을 퍼 와서 '김승태의 가능성을 3년 전에 알아 본 사람'이라고 칭찬(?)해 줬어요(웃음). 데일리e스포츠 칼럼 덕 많이 봤어요.
Q 개인적으로 던전앤파이터와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천재인 선수는 누구라 생각하세요?
A 카트라이더는 당연히 문호준이죠. 문호준은 굉장히 본능적인 선수에요. 분석하고 답을 찾는 것보다 몸으로 먼저 부딪히는 선수죠.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대처를 못하는 거에요. 정해진 답이 있는 선수가 아니거든요. 그만큼 과감하기도 하고요.
던전앤파이터에서는 김태환이 천재형이에요. 손이 정말 빨라요. 여격투가는 네 번의 연타가 필요한데 두 번의 연타만 하면 되는 남격투가 선수들을 압도할 정도죠. 김태환을 보면 진짜 완성형 선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정준의 10년은 행복한 길이었던 것 같아요.
A 맞아요. 해설자로 산 10년 동안 저는 즐겁게 일했고 결혼도 하는 등 행복한 일도 많았어요. 물론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메인 리그 해설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으니 언제 리그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불안감이 행복함을 이기지는 못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리그를 보며 팬들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지금도 저는 해설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요.
좀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 보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제가 아직 덜 배고픈가봐요(웃음).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물론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인데 아마 아이랑 같이 누워 있을 것 같아요(웃음). 계속 행복하고 즐거운 해설자로 남고 싶습니다.
Q 정준의 앞으로의 10년도 계속 '행복로'를 걷겠군요.
A 주어진 일에는 항상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제가 행복하고 즐겁게 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고요. 2008년에 10년 후 제가 해설자를 계속 하고 있을지 몰랐지만 2018년 현재는 10년 후 왠지 계속 해설자를 하고 있을 것만 같아요. 그때 데일리e스포츠와 또 생일이 같은 사람으로 선정돼 20주년 인터뷰를 해보고 싶네요. 재미 있을 것 같아요.
Q 앞으로 많은 종목에서 자주 뵀으면 좋겠어요.
A 항상 '행복로'를 걸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인도하는 해설자가 되겠습니다. 20주년 인터뷰 때 뵙죠(웃음).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