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상은 듬직한 외모와 우직한 성격으로 진에어의 든든한 맏형이자 주장 역할을 성실하게 소화하며 감독을 비롯한 진에어 사무국에게도 깊은 신뢰를 얻은 선수입니다. 게다가 조성주가 마치 고목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처럼하재상 곁을 떠나지 않아 팬들은 ‘아빠와 아들’이라며 두사람을 엮기도 했었죠.
조성주의 금메달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댓글에 소환된 하재상이라는 이름을 보면서 3년 전 은퇴한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우직할 정도로성실했던 하재상이었기에 더욱 관심이 갔죠.
그리고 너무나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듬직하고 우직했던그가 파이터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었는데요. 하재상은 얼마 전 열린 용산구 협회장배 복싱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은퇴한 프로게이머가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경우를 봐왔지만 파이터로의 변신은 처음이었기에 더욱 그의 근황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주에서 땀 흘리며 운동에 몰두하고 있는 하재상을 만난 것은 막 추워진초겨울이었습니다.
Q 오랜만에 팬들에게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A 2015년 은퇴 이후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MBC 게임과 8게임단을 거쳐 진에어 그린윙스에서 은퇴한 전 프로게이머하재상입니다. 정말 이렇게 다시 뵐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Q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A 2015년 은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군대에 갔어요. 내 인생의 반을 바쳤던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차분히 생각해 보고 싶었거든요. 군대에서 다양한 경험도 하고 많은 생각도 하면서 보람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대한지 딱 1년 됐네요.
Q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어요. 권투대회에서 1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A 좀 쑥스럽네요. 용산구협회장배 권투대회에서 1위를 했어요. 처음 나갔던 대회였는데 1위를 해서 스스로도 좀 놀랐어요(웃음). 프로까지 했던 선수를 이겨서 더욱 뿌듯했고요. 프로게이머에서도해보지 못했던 1위를 권투로 하니 신기하기도 했죠.
Q 언제부터 권투를 시작한 거에요?
A 정확하게 권투를 시작한 것은 아니고 종합 격투기를 시작했어요. 프로게이머를 할 때부터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꾸준히 헬스를 다니고 있었거든요. 군에서 제대하고 난 뒤 취미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어서 동네 종합격투기 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했죠.
제가 원래 하나에 꽂히면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처음 배우는 종합격투기가재미있기도 해서 열심히 했더니 관장님께서 그 모습을 좋게 봐 주셨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권투와 주짓수등 다양한 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했죠.
Q 그럼 권투나 주짓수를 시작한지 아직 1년도 안됐다는 이야기인가요?
A 제대하고 좀 쉬다가 시작했으니 아직 1년은 안됐어요. 이번에 권투대회에서 1위를 한 것도 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에요. 옆에서는 소질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관장님을 잘 만나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Q 얼마 전 주짓수 대회에서도 3위를했다고 들었어요.
A 그것도 운이 좋았어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관장님을 잘 만났어요. 저와 캐미가 맞는 것 같아요. 관장님이시키신 것, 요령부리지 않고 열심히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1년 전만 하더라도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Q 제대 후 운동에만 집중한 거에요?
A 그건 아니었어요. 운동과요리공부를 같이 했어요. 8개월 동안 중국집 주방에서 일하면서 요리를 배웠죠. 사실 최종 꿈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식당을 차리는 것이거든요(웃음).
Q 프로게이머, 격투기선수에 이어 식당 운영을 꿈 꾼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A 사실 격투기는 갑작스럽게 제 인생에 들어오게 됐어요. 군대에서 군인을 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다양한 경험을 하던 중 제가 요리를 할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누군가가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식당 운영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연봉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돈을 모았어요. 제대하고 당장 차릴까도 고민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하는 것이 맞겠다 싶어서 중국집에서 일을 하게 된 거죠. 8개월 일했는데 갑자기 격투기 대회를 나가게 되면서 잠시 쉬고 있어요. 예전에일했던 중국집에서 지금도 가끔 연락이 와요. 그냥 계속 일하면 안되냐고(웃음). 다행히 제가 일을 잘했나 봐요.
지금은 우선 운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최종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와서 마음이 따뜻해져서 돌아가는 식당을 차리는 것이 목표랍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요.
Q 그럼 운동에만 몰두한 것이 아닌데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이네요. 격투기에 소질이 있는 것 아니에요?
A 중국집 주방일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그 정도 성적을 낸 것은 대단한것이라고 말을 듣긴 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격투기에 엄청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관장님을 잘 만난 것도 컸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없던 에너지도 생기는데 다행히 둘 다 제가 좋아하는일이라서 힘들지 않게 하다 보니 좋은 성적이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Q 본인 인생의 반을 보낸 프로게이머를 그만뒀을 때 고민이 많았을것 같아요.
A 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확신이 있었어요.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성적이엄청나게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은 있었어요.
사람들은 프로게이머가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굉장히 쉽다고 생각하는데 이보다 더 어려운 직업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실제로 중국집에서 일하고 운동을 하면서프로게이머 할 때보다는 힘들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그 힘든 프로게이머 생활을 최선을 다해 임하고 나니 이 마음가짐과 이 태도로 다른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든 잘해낼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지금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아요. 프로게이머로 지낸 제 인생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죠.
Q 그래서 프로게이머를 그만 둘 때도 망설이지 않았군요.
A 자신의 인생에서 반을 보낸 분야를 그만두게 된다는 것,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니 프로게이머로서의제 삶은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어요. 만약 제가 대충대충 하고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다면 얻은 것이 없었겠죠. 하지만 항상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임했고 좋은 사람들이 남았기에 후회가 남지 않더라고요.
Q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A 사실 프로게이머는 하고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그만두게 될 때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거든요. 하지만 내가 지금 어떤 위치건 최선을 다한다면나중에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감이 생기고 프로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분명 큰 도움이 됩니다.
너무나 상투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 최선을 다해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후회는 남을 수 있어요. 하지만‘그때 내가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이라는 미련은 최대한 남기지않는 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감에 있어서 엄청난 자산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Q 최종 꿈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라 했는데요. 격투기 선수로서의 꿈은 뭔지 궁금해요.
A 지금은 격투기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이라는 꿈을 꾸고 있어요. 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그것이 나중에 제가 꾸는 꿈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예전이라면 이런 일들이 두려웠을 것 같은데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남들 앞에서 서는 것, 나를 알리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알게 됐고 연습도 많이 해서 그런지 무섭지 않아요. 사실 조금 설레기도 해요.
Q 진에어 선수들과는 자주 연락하나요?
A (조)성주나 (김)유진이 등 함께 프로게이머를 했던 선수들과 자주 연락해요. 특히 유진이는 고향도 가까워서 더 자주 보죠. 진에어에서 함께 했던사람들은 제가 프로게이머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주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들이에요. 지금도 항상 고맙고고마운 존재들이랍니다.
Q 격투기 선수에서 식당 주인까지, 하재상 선수가 꿈 꾸는 모든 일이 다 잘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A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그래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열심히 하면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제 인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프로게이머로서의삶을 세상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요.
얼마 전 (조)성주가 금메달을따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너무 자랑스러워서 주변에 다 자랑했어요. 그렇게 제가 속해 있던 분야가 더 잘 될 수 있도록, 더 발전할수 있도록 응원할게요. 그리고 저 역시 최선을 다해서 꿈을 이루고 당당하게 전 프로게이머라는 이야기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 잊지 말고, 기억해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저를 알고 지냈던 많은 분들 그리고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신 부모님과 은인들에게도 감사해요. 지금에서야 이렇게 고마움을 전하게 돼 죄송한 마음도 들고요. 응원해주셨던 팬들께도 감사 드리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소식 전해드릴게요. 제가 있던 곳, 남은 분들께서 잘 지켜주시고, 이왕이면 더 발전되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