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배에서 7배에 달하는 연봉을 포기하고 kt 이적을 선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엄성현은 이슈의 중심에 섰습니다. 개다가 ‘스코어’ 고동빈이 정글러로 버티고 있는 kt에 입단한다는 사실만으로 팬들은 엄성현의 이같은 선택에 많은 의문을 가졌죠.
뛰어난 피지컬로 주목 받았지만 때로는 아쉬운 선택으로 비판 역시 함께 받았던 엄성현. 진에어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하며 스스로 의기소침해 진 상황에서 엄성현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kt행을 선택하면서 그는 차기 시즌 가장 주목할 선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활발하지만 때로는 고독한, 다정다감해 보이지만 가끔은 한없이 냉혹한, 귀여운 막내 같지만 많은 고민으로 누구보다 속 깊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엄티’ 엄성현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Q 오랜만에 팬들과 인사하는 것 같아요. 팀도 옮겼으니 자기 소개를 한번 해야 할 것 같아요.
A kt 롤스터 정글러로 뛰게 된 ‘엄티’ 엄성현입니다. 갑자기 이렇게 소개를 하려고 하니 쑥스럽네요.
Q 숙소에 합류한지 2주정도 됐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어때요?
A 딱히 어떤 기분이 든다기 보다는 집에서 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일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죠.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싫은 기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아니에요. 전 원래 일할 때의 짜릿한 긴장감을 좋아하거든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가 특이한 지점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가장 늦게 퇴근할 때 기분이 진짜 좋거든요.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새벽 5시에 불을 끄고 숙소로 가는 길이 그렇게 좋아요.
Q 듣기로는 또다시 의외의 포인트에서 kt로의 이적을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
A 우선 연습실이나 스트리밍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은 놀랍긴 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간식 준비를 정말 많이 해주셔서 가장 감동이었습니다(웃음). 사실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닌데 간식 사러 편의점으로 내려가는 시간이 정말 아깝거든요. 편의점에 가지 않게 돼 행복하고 감동이에요.
Q 예전에 같이 활동 했던 ‘눈꽃’ 선수와 또다시 같은 팀이 됐어요. 어떤가요.
A 그래도 모르는 사람 보다는 아는 사람이 낫기 때문에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플레이도 해봤기 때문에 새롭게 호흡을 맞춰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과 하는 것이 더 좋죠. 반갑기도 했어요.
Q 지금 연봉의 5배에서 7배가 넘는 제안을 받았는데도 kt 입단을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요즘 온라인에서 정말 ‘핫’한 이슈거든요.
A 저도 해외에서 제안 받았을 때 귀를 의심했어요. 내가 받아도 되는 연봉인가 싶은 금액을 부른 곳도 있었거든요. 솔직히 고민이 많이 됐죠. 저희 집이 부자도 아니고 제 인생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제 마음 속에서는 아직 풀리지 않은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돈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 말이에요. 단순하게 LCK 우승이나 롤드컵 진출 같은 단편적인 목표가 아니었어요. 정점을 찍어본 팀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강한 이끌림, 최고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 보고 싶다는 갈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가장 컸던것 같아요.
또 하나, kt에는 고동빈이라는 정글러가 있잖아요. 혹자는 그 점 때문에 왜 kt에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주전 경쟁이 치열할 텐데 주전이 보장되는 곳이 아닌 탄탄한 정글러가 있는 kt에 가는 것은 모험이라는 평가도 있고요. 하지만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저에게‘스코어’의 존재는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어요. ‘스코어’의 모든 장점을 흡수하고 싶었고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여러 이유에서 저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kt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kt 코칭 스태프가 저를 만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이야기가 ‘올래’였던 것 같아요(웃음). 팀에 올 거냐고 물어보는 거였는데 왠지 kt와 너무 잘 맞는 단어잖아요. 곰곰이 생각해 보고 혼자 ‘빵’ 터졌던 기억이 나네요.
Q ‘스코어’ 팬임을 자처했는데 선수들 사이에서는 ‘성덕(성공한 덕후)’라 불린다고 들었어요.
A ‘성덕’이 맞죠(웃음). 롤모델로 삼았던 그가 바로 제 옆에 있잖아요. LCK에서 처음 경기 했을 때 (고)동빈이형에게 탈탈 털린 기억이 있는데 그때부터 정말 이 사람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롤모델이었던 동빈이형과 같은 숙소, 같은 연습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자체가 마법 같아요.
Q 나중에 포기했던 연봉이 아까울 수도 있을 텐데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어요?
A 당연히 자신 없죠(웃음). 분명히 후회할 것 같긴 해죠. 하지만 세상 모든 선택은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에요. 다만 그 후회의 크기가 중요할 뿐이죠. 나중에 생각했을 때 ‘돈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선택은 탁월했어’ 정도의 후회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지금 제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멋있게 말하면 참 좋을 텐데 거짓말은 못하겠네요(웃음). 그냥 거짓말을 했어야 하나 싶지만 지금의 제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Q 지금 일어난 변화들에 대해 ‘마법’같다는 표현을 했어요.
A 마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고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수 억 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kt에 들어온 제 선택이 어떻게 보면 마법 같아요. 사실 아직까지도 제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인지 명확하게 이야기 할 수 없어요. 그냥 마법처럼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 버렸거든요(웃음).
하지만 저에게 일어난 마법이 그저 그런 마법이 아닌, 제 인생을 바꾸는 멋진 마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노력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얼마나 멋진 마법이 제 앞에 펼쳐질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 두려 합니다.
Q 요즘 kt 봇듀오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A 물론 팬들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실력으로는 절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호흡을 맞춰본 시간이 짧다는 것은 문제겠지만 두 사람의 실력에 대한 걱정은 기우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고 어떤 팀에 가도 밀리지 않을 노력과 열정을 가졌거든요. 호흡을 좀더 맞춘다면 아마도 모두가 깜짝 놀랄 것이라 생각해요. 저희 kt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봇듀오를 믿고 있습니다.
Q 최근 팀들이 리빌딩을 거치면서 완전히 다른 판도로 LCK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요. 어떻게 예상하나요.
A 누구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일거에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웃음). 물론 다른 점 하나는 강팀이 많아질 것 같다는 것이죠. 우선 선수 변동이 없는 그리핀과 담원이 무서워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실력 있는 선수들로 구성돼 있잖아요. 게다가 젠지e스포츠와 SK텔레콤 역시 리빌딩을 통해 강팀으로 거듭났고요. 예전에 비해 강한 팀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장되거나 떨리기 보다는 기대돼요. 강한 팀들이 많아질수록 팬들에게는 재미있는 매치업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어떤 경기들이 나올지 설레요.
Q LCK에서 붙어 보고 싶은 팀이 있어요?
A 진에어와 꼭 해보고 싶어요. kt에 오면서 진에어에게는 절대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특히 한상용 감독님에게 지고 싶지 않아요(웃음). 농담이고 진에어와 방향이 맞지 않아 이적했다고 말했는데 만약 지게 된다면 제 말에 모순이 생기는 것이잖아요. 게다가 패하게 된다면 스스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신력이 무너질 것 같아요. 그래서 꼭 이기고 싶습니다.
Q 굉장히 아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똑 부러지는 성격인 것 같기도 한데.
A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긴 해요. 칭찬인지 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평소에 여가 시간을 보낼 때 유투브 시청을 많이 하는데 게임뿐만 아니라 시사, 정치, 사회적 이슈 거리들을 자주 찾아보거든요. 재미있어요. 내 생각과 다른 주장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요.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의미로 똑 부러진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로 보여주는 선수, 변명을 하지 않는 선수라면 코칭 스태프와 팬들에게 똑 부러지는 선수로 불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게 되도록 더 노력해야죠.
Q kt로 이적을 결정하고 집에서 뭐하면서 지냈는지 궁금해요.
A 제가 밖에서는 정말 활발한데 집에서는 무뚝뚝한 아들 그 자체거든요(웃음). 저뿐만 아니겠지만요. 그런데 이번에 집에 있을 때는 새삼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게임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항상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거든요.
사실 부모님께서 게임을 무척 반대하셨어요. 특히 엄마가 심했죠. 제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셔서 중학교 때부터 학원을 정말 많이 다녔죠. 저 역시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고 싶지 않아 공부에 몰두했고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말,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만나면서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처음에 부모님께서는 엄청나게 반대하셨죠. 아무래도 게임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으실 수밖에 없잖아요.
무작정 제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 보다는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단지 공부가 하기 싫어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꾸고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죠. 그래서 부모님께 성적을 떨어트리지 않고 학원 대신 집에서 공부할 기회를 달라고 말했어요. 대신 남은 시간 동안에는 게임을 하면서 이 기간 동안 이 만큼의 결과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죠.
결국 공부도, 게임도 부모님과 한 약속을 지켰어요. 그때서야 완고하게 반대하시던 엄마도 제 의지를 믿어 주셨어요. 이후에는 제가 게임 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지지를 보내주고 계시죠. 그때 부모님께서 저를 믿어 주시기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 같아요.
Q 프로게이머를 꿈 꾸는 학생들에게 좋은 팁 같아요.
A 내 꿈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증명할 수 있다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 확신해요. 무턱대고 지지해 달라고 말하기 보다는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 정도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프로게이머가 되도 절대 성공할 수 없거든요.
Q kt에서는 어떤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A 팀에서 요구하는 어떤 미션이든 다 해내고 싶어요. 내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필요한 것을 바로 꺼내서 보여줄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에요.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kt라는 울타리 안에서 꾸준히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제가 예전에 스타크래프트를 자주 즐겨 봤는데 개인적으로 이영호 선수를 좋아했어요. 그때마다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이영호 선수가 kt 유니폼을 입고 쌓아놓은 업적을 보며 프로게이머라면 저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신기하게도 kt에 입단해 이영호 선수가 받은 수많은 트로피들을 매일보고 있잖아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kt에서 이영호 이상의 업적을 기록하는 선수가 되고 싶기도 해요.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가 돼 있겠지만요(웃음).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 드려요.
A 제가 어떤 모습으로 팬들에게 기억될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이뤄 놓은 것이 없으니 백지 상태라 생각해요. 하지만 나중에 그 백지 위에 팬들이 ‘최고의 선수’라고 써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많은 응원 부탁 드립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구남인 기자 (ni041372@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