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유가 속한 아나키는 아마추어 팀이었지만 LCK에서 기존 강팀들을 상대로 화끈한 전투력을 선보이면서 많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5년 하반기 아프리카 프릭스가 팀을 인수하면서 남태유는 2016년 주장으로 동료들을 이끌며 중위권의 성적을 냈다.
시즌을 마친 뒤 북미로 건너간 남태유는 엔비어스에서 맹활약했지만 팀 성적은 부진했고 '리라 원맨팀'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LCS에서 프랜차이즈 도입 후 이적한 클러치 게이밍에서는 첫 시즌에 4위를 차지하며 포스트 시즌에도 진출했지만 이후 두 시즌 연속으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LCK의 치열함이 그립다"며 "반드시 롤드컵에서 인사 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힌 남태유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북미에서 활동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잘 지내고 있나.
A 처음과 비교한다면 너무도 잘 지내고 있다. 음식도 맛있고 새롭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 하루하루가 즐겁다. 다만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해서 소통이 불편한 경우가 가끔 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느끼고 있다.
Q 지난해 서머에 이어 스프링도 9위에 그쳤다.
A 우리 팀도 그렇지만 10위인 100 씨브즈도 한국인이 3명이라 커뮤니티에 한국인이 3명이라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글들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어 조금은 아쉽더라. 연습 결과는 정말 좋았는데 실전에서는 이상하게 다섯 명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았고 실수가 겹치면서 부진한 성적을 냈다.
Q 내부에서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A 사실 동료들과 코치진, 게임단 관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한국인이 3명이라 낮은 성적을 거뒀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웃음). 개인적으로는 서머에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Q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 경기가 끝난 뒤 많은 피드백이 나오지만 나에게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서 성장하는 속도가 더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대회에 출전만 해도 '스코어' 고동빈이나 '피넛' 한왕호 같은 선수들과 맞붙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며 가파르게 성장했는데 북미에서는 내가 다른 정글러들의 수준만 높여주는 느낌이다. LCK의 치열함이 그립다.
Q 클러치 게이밍과 계약 종료 후 LCK로 복귀할 수 있지 않나.
A 현실적으로 본다면 어려움이 많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개인적으로는 LCK 우승까지 노려보고 싶지만 가능성이 높은 팀들은 날 원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조금은 가능성이 낮은 팀의 정글러로 들어갈 텐데 현재 북미에서 제시하는 좋은 조건과 대우를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Q 북미에서 훌륭한 정글러로 인정받고 있다.
A 한국과 중국에서 3년간 선수 생활을 했지만 자랑할 만한 커리어는 없다. 그런데 북미에서는 아나키와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활동했던 내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 같다. 북미에서 늘 이기기 위해 게임을 했을 뿐인데 내 플레이를 무척 좋아해 줬고 킬을 주워 먹었을 뿐인데 정말 잘한다고 평가해주면서 '리라' 원맨팀으로 봐주는 그 상황이 재밌었다. 물론 함께하는 동료들에게는 미안했다.
Q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었는데 왜 북미로 갔나.
A 데뷔 때 가졌던 목표가 가장 큰 이유다. 나는 데뷔할 때 LCK 결승전 무대에 오르는 것과 그 자리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롤드컵까지 진출한다는 3개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데뷔 때부터 모든 계획은 삐걱거렸고 아프리카 프릭스에서도 이 꿈을 모두 이루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해 북미행을 결정했다.
Q kt 롤스터 시절 번번이 예선에서 탈락했던 것도 영향을 끼쳤나.
A 아마추어 팀으로 NLB에 출전했을 때 좋은 성적을 거둬서 kt 롤스터에 테스트 없이 입단했고 연습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매번 예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계속되는 예선 탈락에 자신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후 CJ 엔투스에 들어가서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한 달 만에 팀에서 나왔고 선수 생활을 포기할 생각으로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Q 개인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팀에 입단했다.
A 방송을 하면서 성적 부진으로 팀에서 방출됐다는 등의 루머에 시달렸고 선수 출신 개인 방송 진행자가 내 실력과 관련해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선수에 도전해서 내 실력을 입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더라. OMG에 입단했는데 갑자기 중국 순수 혈통 팀을 만든다고 이야기했고 계약을 풀어주지 않아 숙소에서 솔로 랭크만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너무나 싫었다.
Q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싫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아나키로 대회에 출전한 이유는.
A 한국에서 자취방을 구해 확실하게 개인방송 진행자로 마음을 굳혔다. 그때 당시 함께 방송을 진행하던 '나는 눈꽃' 노회종이 방송 홍보를 위해 함께 대회에 나가자고 했고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흔쾌히 승낙했다. 마음이 가벼워서 그랬는지 경기력도 좋았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나키가 아프리카 프릭스 창단까지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이 시작됐지만 롤드컵이라는 꿈을 위해 팀을 떠나게 됐다.
Q 중국이나 유럽에서도 제안을 받았을 것 같은데 왜 북미로 결정했나.
A 중국은 OMG에서 받았던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꺼려졌다. 유럽팀과 계약까지 했는데 내가 현지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고 향수병까지 나면서 오너에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니 계약서를 가져와 바로 정리해줬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다면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보내줘서 정말 고마웠다. 팀에서 나온 후 북미 지역에서 연락이 왔고 로스터 마감을 하루 앞두고 엔비어스에 합류했다.
Q 처음 북미 무대에 섰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
A 북미에 가기로 했을 때 엔비어스라는 팀을 잘 몰랐고 적응할 시간도 없이 빠르게 리그가 진행돼 별다른 기억이 없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는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게임 외적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좋은 기억들이 쌓이면서 엔비어스라는 팀에서 kt 롤스터의 고동빈 선수처럼 오랫동안 한 팀에서 활동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프랜차이즈 심사에 탈락해서 어쩔 수 없이 또 팀을 찾기 시작했고 지금의 클러치 게이밍에 합류했다.
Q 클러치 게이밍이 2018 스프링 이후 2연속 하위권에 머물렀다.
A 팀 성적이 좋지 않아 스스로 반성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나를 좋게 평가해주는 것 같아 조금은 당황스럽다. 운이 좋았던 순간을 좋게 포장해주셔서 감사하다. 정작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큰 반향이 없더라(웃음).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A 한국에서 푹 쉰 뒤 동료들과 열심히 서머 시즌을 준비할 것이다. 이번 시즌에는 기필코 좋은 성적을 거둬서 롤드컵까지 진출하고 싶다. 롤드컵에서 한국 중계진이 내 경기를 한국 팬들에게 중계해준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한국에서 큰 활약이 없어서 아직도 기억하는 팬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한국 e스포츠 팬들이 LCK뿐만 아니라 모든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반드시 롤드컵에서 인사 드리겠다.
구남인 기자 ni041372@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