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는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선수로 활동하는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개인 리그를 모두 우승하지는 못했지만-이영호도 사람인지라-프로리그에서는 팀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꾸준하게 활동했죠. 2010년에는 '폭군' 이제동과 라이벌 관계를 이루면서 1년 내내 개인 리그 결승전에서 맞붙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오른팔 부상으로 인해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던 이영호는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을 변경했을 때에는 스타1 시절 보다는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2015년말 은퇴 이후 스타1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아프리카TV 스타크래프트 리그(이하 ASL)에서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최고의 선수로 다시 우뚝 섰습니다.
지난 9월 1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능동 숲속의 무대에서 이영호는 대기록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스타1으로 진행된 대회에서 4회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없었습니다. 스타리그의 골든 마우스, MSL의 금배지, ASL의 골든 트로피를 모두 들어 올린 바 있는 이영호는 ASL 4회 우승을 노렸습니다. 작년에 열린 ASL 시즌6에서 결승에 올라 ASL 4회 우승에 도전했던 이영호는 김정우에게 2대3으로 패하면서 아쉬움을 남긴 바 있습니다. 오른팔 부상으로 인해 ASL 시즌7에 나서지 않았던 이영호는 ASL 시즌8에서 4회 우승에 재도전했고 장윤철과 결승전에서 만났습니다.
다들 경기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영호는 결승전에서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줬습니다. 수비와 공격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고 장윤철의 깜짝 전략이었던 패스트 캐리어에 대한 대비책도 완벽했습니다. 7전4선승제로 진행되면서 밤늦게까지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영호는 4대0 완승을 거두면서 불과 두 시간 만에 경기석을 빠져 나와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영호는 어떻게 장윤철을 4대0으로 격파할 수 있었을까요. 잘한다라는 한 마디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다소 길게 적어 봤습니다. 장윤철의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던 3, 4세트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나는 너의 스타일을 알고 있다
4강에서 정윤종을 3대0으로 격파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영호는 "장윤철이 이번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온 이유가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맵마다 최적화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고 칭찬했는데요. 이영호는 장윤철의 스타일을 꼼꼼하게 분석했음을 결승전 내내 보여줬습니다.
장윤철은 초반에 상대를 흔드는 플레이를 좋아합니다. 테란을 상대할 때 확장을 먼저 늘리며 힘싸움을 펼치는 프로토스도 있지만 장윤철은 초반 찌르기를 통해 피해를 입히면서 격차를 벌리는 플레이를 선호합니다. 테란을 찌르기 위한 전략은 여러가지입니다. 초반 질럿, 드라군을 활용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유닛인 다크 템플러를 쓰기도 합니다만 장윤철은 셔틀과 리버로 드롭하면서 테란을 괴롭히는 스타일입니다.
이영호는 초반에는 방어에 치중했습니다. 초반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중후반 힘싸움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뜻이지요. 1세트에서 장윤철의 드라군에 의해 압박을 받았던 이영호는 벌처로 프로브를 계속 솎아내며 승리했습니다. 2세트에서는 후반으로 끌고 가는 전술의 완성형을 보여줬죠. 장윤철의 견제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후반으로 끌고 갔고 공격력 3단계, 방어력 2단계 업그레이드를 완료한 뒤 밀고 나가서 끝냈습니다.
◆맞춤 전략의 시작
3세트부터 이영호는 회심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초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수비적으로 풀어간 것은 비슷했지만 정확하게 준비된 타이밍에 치고 나갔습니다. '트라이포드'에서 열린 3세트에서 이영호는 두 방향으로 SCV를 보내면서 장윤철이 3시 지역에 위치했음을 파악했습니다. 공중으로 이동했을 때 먼 쪽에다가 커맨드 센터를 지은 이영호는 장윤철보다 확징이 빨랐죠. 본진 언덕과 앞마당 확장에 벙커를 지으면서 지상 방어선을 구축한 이영호는 혹시나 장윤철이 시도할 수 있는 셔틀 견제를 막기 위해 요소마다 터렛도 지었습니다.
레이스를 생산한 이영호는 7시 지역으로 이동시켰다가 장윤철의 드라군에 의해 공격을 받자 중앙 쪽으로 틀었고 우연치 않게 장윤철이 중앙 지역에 넥서스를 하나 더 지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엄청난 행운이었죠. 장윤철이 앞마당과 중앙에 2개의 넥서스를 가져갔지만 이영호는 드롭십에 탱크 2기를 실어 자원 채취를 방해하면서 프로토스의 자원력이 폭발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장윤철이 본진 구석에 스타 게이트와 플리트비콘을 건설하는 것을 스캔으로 정확하게 확인한 이영호는 팩토리를 7개까지 늘렸고 아모리도 2개나 건설했습니다.
이 시점이 이영호 전략의 핵심입니다. 2개의 팩토리에서 꾸준히 탱크를 모으면서 10기를 확보한 이영호는 아모리 2개에서 업그레이드를 돌린 덕에 공격력과 방어력 업그레이드를 동시에 완성시킵니다. 10분37초에 캡처한 화면과 5초 뒤인 10분42초에 캡처한 화면을 보면 아래쪽에 탱크가 공방 1업이 완료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영호의 병력 숫자는 장윤철보다 적었지만 진출을 도모합니다. 벌처가 아닌 골리앗을 탱크 사이에 배치한 이영호는 탱크를 순차적으로 시즈 모드하면서 밀고 들어갔습니다. 장윤철의 지상군의 업그레이드가 전혀 되지 않았고 캐리어도 2기에 불과했던 타이밍에 치고 나간 이영호는 드라군과 질럿을 녹인 뒤 장윤철의 본진을 장악했습니다.
장윤철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3개의 스타게이트에서 캐리어를 모으면서 5기까지 모았지만 인터셉터 숫자를 늘리는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인터셉터 8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캐리어의 핵심은 인터셉터인데 숫자가 갖춰지지 않으면서 제 화력을 발휘할 수 없었죠. 게이트웨이 지역을 장악 당한 장윤철은 캐리어로 치고 빠지면서 골리앗을 치워내려고 했지만 이영호는 팩토리에서 골리앗만 생산해 전장에 충원했죠. 장윤철의 캐리어가 역습을 시도하며 이영호의 본진을 공략하려 하자 이영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근처에 배치해 놓은 골리앗으로 깔끔하게 수비해냈습니다.
◆통하면 한 번 더
'신피의능선'에서 열린 4세트에서도 이영호의 핵심 전략은 공방업 타이밍 러시였습니다. 앞마당에 이어 3시에도 커맨드 센터를 건설한 이영호는 장윤철이 9시에 넥서스를 원활하게 가져가지 못하도록 마인을 매설해 시간을 벌었습니다. 장윤철이 게이트웨이를 3개로 늘리면서 드라군으로 압박을 시도했지만 이영호는 SCV와 탱크, 벌처로 침착하게 수비해냈습니다.
장윤철은 9시에 넥서스를 지으려 했지만 이영호가 미리 매설해놓은 마인에 의해 건설하지 못했고 6시에 넥서스를 가져가야 했습니다. 이영호는 스캔을 6시와 본진 우측에 사용하면서 장윤철이 추가 넥서스를 6시에 지었으며 캐리어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영호는 3세트와 마찬가지로 11분44초에 공격력과 방어력이 동시에 업그레이드되자 치고 나갔습니다. 장윤철이 질럿과 드라군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3세트와 달랐지만 이영호의 타이밍을 넘어서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지상군 숫자와 캐리어 숫자 모두 테란의 메카닉 병력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죠. 9시 언덕에 캐리어를 배치하면서 한 차례 탱크를 줄이기는 했지만 9개의 팩토리에서 탱크와 골리앗을 쏟아낸 이영호의 2차 조이기는 뚫어내지 못했습니다.
ASL 사상 첫 4회 우승, 통산 10회 우승을 달성한 이영호는 인터뷰에서 장윤철을 4대0으로 제압할 수 있었던 비법을 공방 1업 타이밍 러시라고 밝혔습니다. 셔틀을 활용한 견제를 좋아하고 테란이 수비적으로 운영할 때에는 캐리어로 흔드는 능력이 좋은 장윤철을 저격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전략이라고 전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Q 장윤철을 상대로 어떻게 준비했나.
A 1세트에서 전략을 준비했는데 장윤철도 전략을 쓸 것 같아서 게임이 어지러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치밀하게 수비 방법과 공격 방법을 준비했다. 3, 4세트에서는 대회에 쓰이지 않았던 전략을 구사했는데 통했다. 2개의 아모리를 동시에 올리면서 공격력과 방어력이 1단계 업그레이드됐을 때 치고 들어가는 작전이다. 이 전략은 장윤철에게 특화된 전략이었는데 제대로 통했다.
정윤종과의 4강전에서 이영호는 다양한 전략으로 상대를 흔들면서 3대0으로 완승을 거뒀습니다만 장윤철과의 결승전에서는 완성도 높은 공방업 타이밍 러시를 마무리 카드로 준비해왔습니다. 공식전에서 잘 쓰지 않았던 공방 1업 타이밍 러시라는 특별한 전략까지 준비한 것을 보니 '이영호가 ASL 4회 우승을 정말 달성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이영호는 오른팔 부상이 심각하다고 또 한 번 언급했습니다. 8월에 MRI를 찍으려 했는데 ASL이 진행되고 있어 검진을 미루고 있다고 하더군요. 결승을 마친 뒤 MRI 촬영을 진행하고 차기 대회 출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입니다. 이영호는 무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는데요.
Q 다음 시즌 목표는.
A 앞서 말씀 드렸듯이 오른팔이 좋지 않아서 대회마다 나가지는 못할 것 같다. ASL 시즌7에도 불참하고 이번 시즌8에 나와서 우승했다. 한 시즌 쉬고 나왔음에도 오른팔에 부담이 되더라. 그래서 목표를 수정했다. 출전한 ASL에서는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번 시즌8까지 7번 대회에 참가해서 4번 우승했다. 우승 확률이 5할이 넘는다. 이 기록을 유지하고 싶다. 대회 승률 50%가 아니라 우승 확률 50%를 유지하겠다.
이영호의 목표는 대회 우승 확률 50%였습니다. 최종병기다운 목표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번 결승전처럼 완성도 높은 전략을 들고 나오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영호가 짜놓은 공방 1업 타이밍 러시는 우승에 대한 갈증을 담은 전략이었기에 더욱 간결했고 짜임새가 있었습니다.
다음 시즌에도 이영호의 멋진 경기를 볼 수 있기를.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