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롤드컵은 한국에서 열렸다. 당시 롤드컵 우승 후보로 꼽히던 로얄 네버 기브업을 상대로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이면서 3대2로 극적인 승리를 따낸 팀이 있었으니 바로 G2 e스포츠다.
그 때 서포터를 맡았던 '와디드' 김배인은 외국팀 진출의 성공 사례로 하이라이트를 받았다. 한국의 메이저 대회인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에서 뛴 경력이 없었지만 유럽으로 건너가서 실력을 입증했고 G2의 주전 서포터로 롤드컵 4강 무대까지 올랐으니 주목을 받을 만했다.
2019년 시즌이 열리기 직전 김배인은 G2로부터 이적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청천벽력이었다. 완벽하게 한 팀이 됐다고 생각했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뛸 채비를 마친 시점에 나온 이야기였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G2가 아닌 로그라는 팀에서 2019년을 시작한 김배인은 서머를 앞두고 북미팀인 플라이퀘스트로 이적하면서 시즌마다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어야 했고 심지어 지역까지도 바꿔야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올해처럼 다사다난한 경험을 한 적은 없었지만 "나를 단련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김배인을 만났다.
Q 2019 시즌을 유럽팀인 로그에서 시작해서 북미팀인 플라이퀘스트로 마쳤다.
A 2019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패배와 실패를 몸소 체험하는 한 해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선수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는 내 선택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패배나 실패라고 생각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내가 팀을 만들어서 챌린저스에서 뛰었을 때조차도 내 의지가 반영된 도전이었고 유럽으로 건너갔던 2017년 로캣에서의 생활도 나름대로 잘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느낌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이렇게 된 것까지도 내가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Q 2018년 롤드컵이 끝난 뒤 지스타 현장에서 만나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G2 e스포츠와 장기 계약을 했기 때문에 2019년에도 G2 소속으로 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시즌이 시작하기 전 로그로 이적했다. 이유가 있었나.
A 그 과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G2와의 장기 계약이 유효한 상황에서 트레이드 비슷한 형식으로 로그로 가야 했다. 다른 팀을 찾아볼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팀들은 로스터를 구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Q 받아들이기 힘들었을텐데.
A 내 적응력을 시험해보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로그로 가면서 결과적으로는 이리저리 떠도는 한 해가 시작됐지만 외부적인 원인을 찾기 보다는 내가 부족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Q 로그에서 치른 스프링 시즌은 어땠나.
A 나의 선택이 거의 담겨 있지 않았기에 정말 당혹스러웠지만 주어진 상황에 최대한 적응하려고 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시즌 내내 패배를 경험했다. 스프링 최종 성적이 2승16패였고 10위로 마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내 탓이다.
Q 서머를 앞두고 북미팀인 플라이퀘스트로 이적했다. 이 또한 타의에 의한 이적이었나.
A 형식은 똑같이 트레이트였다. 하지만 내 의사가 어느 정도는 반영됐다. 내가 팀에 요청했다. 내가 원하는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것 같고 뜻을 전했고 팀에서는 옵션을 알아봐줬다. 그 중에 상황이 맞는 팀이 북미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LCS)의 플라이퀘스트였다. 이 자리를 빌어 로그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Q 플라이퀘스트로 이적이 확정됐지만 초반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A 비자 발급이 늦어졌다. 이적 결정이 나면서 나는 플라이퀘스트 숙소에서 연습을 시작했지만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서머 개막 이후 3주 동안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유럽과 미국의 거리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느꼈다. 그 기간 동안 팀이 1승5패로 성적이 저조했기 때문에 심적인 압박감도 상당히 컸다.
Q LCS 서머 시즌을 5승13패로 마무리했지만 스프링에서 챔피언십 포인트를 획득하면서 지역 대표 선발전까지 출전했다.
A 처음 출전한 4주차에서도 2전 전패를 당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남은 경기에서 4승6패를 거뒀고 지역 대표 선발전에서는 뭔가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Wildturtle' 제이슨 트랜과의 호흡도 잘 맞아 들어가고 있었기에 반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클러치 게이밍의 분위기를 막지 못했다.
Q 서포터는 원거리 딜러와의 호흡이 중요한데 팀을 자주 옮기면 더 어렵지 않나. 다른 포지션과는 확실히 차이가 날 것 같다.
A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듀오'라고 이름 붙여지는 포지션은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 조합이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 각자의 포지션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내고 있는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실전에서 맞춰보지 않으면 어디가 문제인지 찾기가 어렵다. LCS에 처음으로 출전한 4주차에서 두 경기 모두 패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도 제이슨 트랜을 비롯한 플라이퀘스트 동료, 코칭 스태프가 잘 도와줘서 막바지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 합이 늦게 맞았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Q 올해 G2는 롤드컵 우승 후보로 꼽힐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
A 'Mikyx' 미하엘 메흘레가 서포터로 활약하면서 내가 있을 때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에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경하고 있다. 내가 G2에서 뛰었을 때보다 모든 선수들이 발전했고 특히 정글러 'Jankos' 마르킨 얀코프스키가 엄청나게 성장했다. G2는 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속도도 빠르다. 스프링보다 나은 MSI를 치렀고 MSI보다 나은 서머를 보냈다. 롤드컵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G2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레슨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팀이다.
Q 객원 해설자로 롤드컵을 중계해본 소감도 듣고 싶다.
A 그날 정말 힘들었던 기억과 엄청나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공존한다. 클러치 게이밍과 유니콘스 오브 러브, 맘모스가 2승2패가 되어 순위 결정전 두 번을 치르면서 새벽 3시까지 중계했다. 롤파크에서 한 시간을 더 보낸 뒤 서울역으로 가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유럽과 미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언어가 꼬일 때가 있는데 중계할 때가 그랬다. 대부분 영어를 쓰다가 우리말로 7~8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우리말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급하게 결정되어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재미있게 봐주신 시청자들께 고마우면서도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Q 롤드컵 객원 해설자로 나서기도 했고 지금도 롤드컵을 챙겨보고 있다고 하니 어느 팀이 우승할 것 같은가.
A SK텔레콤 T1이 우승할 것 같다. G2는 내가 없어서 4강까지만 갔으면 좋겠다. 물론 농담이다. G2와 SK텔레콤ㅇ이 결승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멋진 그림일 것 같다(이 인터뷰는 8강 대진이 확정되기 이전인 10월16일 진행됐다). 개인적으로는 SK텔레콤 T1의 서포터 '에포트' 이상호의 플레이를 보면서 감동을 받고 있다. '매드라이프' 홍민기와 '마타' 조세형 이후로 '어나더 레벨'이라는 생각이 든 서포터는 없었는데 이상호가 그 정도로 성장한 것 같다. 같은 포지션인 서포터 입장에서도 감명 깊게 보고 있다.
Q 2020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A 한국에 들어와서 솔로 랭크를 하면서 기량을 점검하고 있다. 생각보다 게임이 잘 되고 있어 자신감이 올라오고 았다.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고 이 분위기를 차기 시즌까지 이어가고 싶다. 또 유튜브도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주셔서 힘을 받고 있다. 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업데이트할 생각이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북미만이 갖고 있는 프로 선수들의 생활을 전달할 생각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팬들과 소통할 생각이니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시면 좋겠다.
별 볼 일 없는 '와디드'라는 선수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팬들에게 항상 감사하다. 2018년 롤드컵 이후 많은 기대를 해주셨는데 2019년에는 좋지 않은 것들만 보여드려서 실망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팬들의 응원과 성원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20년에는 좋은 소식을 많이 알려 드리는 '와디드' 김배인이 되겠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