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알아주는 ‘쪽집게’ 점쟁이로 불리는 이 사람은 락스 랩터스 박인재 감독입니다. 박인재 감독에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미래를 물어보게 된 것일까요? 신내림이라도 받을 것일까요?
퍼플 라이더의 저주를 깨기 위해 선수 시절부터 엄청나게 노력했고, 일반인들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독특한 세리머니로 주목 받았던 박인재. 팀전 결승전에서 유영혁을 꺾고 팀에 우승컵을 안기며 실력마저도 톱 클래스임을 증명했던 박인재는 이제 명실상부 카트라이더 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카트라이더는 감독이 필요 없다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는 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프로게임단에서는 암암리에 박인재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작전을 짜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과연 그가 잘나가는 ‘점쟁이’ 감독이 된 사연은 무엇일까요? 박인재 감독의 손을 거친 유망주들이 잘나가는 이유 또한 무엇일까요? 어떤 종목의 어떤 감독보다 체계적이고 진심을 다해 선수들을 지도하는 박인재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미래를 내다 보는 ‘쪽집게’ 점쟁이?
지금은 카트라이더 리그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프로게임단이 생겨나고 있지만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카트라이더의 미래는 어두웠습니다. 새로운 선수 유입이 거의 없었고 현장을 찾는 팬이나 온라인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 역시 지속적으로 감소했죠. 카트라이더 리그가 계속 열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선수들이 늘어갈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암울한 상황에서 군 제대 후 회사에 잘 다니고 있던 박인재가 갑자기 대출을 받아 팀을 꾸린다는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리기에 급급했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출까지 받아 팀을 만든다는 소식에 선수들조차 "형, 그러지 말라"며 다시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지지해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당시 카트라이더 리그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고 그 와중에 팀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냥 하고 싶었어요. 기업들이 들어와서 프로게임단이 만들어지고 선수들이 연봉을 받으며 게임을 하는 장면이 계속 그려졌어요. 망상이라고 이야기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바뀔 것 같았거든요."
박인재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대출을 받아 숙소를 마련하고 뜻이 있는 선수들을 모았습니다. 그냥,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망상이 현실로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무조건 성공시키자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다 보면 제가 꾸던 꿈이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너무 긍정적인가요(웃음)? 만약 안 된다 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어요.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했으니 무슨 미련이 있겠냐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죠."
결국 그의 망상이 현실이 됐습니다. 프로게임단이 생겨났고 선수들은 팀에 소속돼 연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숙소와 연습실에서 생활하면서 선수들의 실력은 점점 상향 평준화됐고 경기는 더욱 재미있어졌으며 현장은 팬들로 넘쳐납니다. 2년 전만 해도 꿈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현실이 된 것이죠.
"이렇게 될 줄 알고 대출 받아 카트라이더 팀을 만든 것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아요.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렇게 될 줄 몰랐죠.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뿐인데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 돈은 많이 벌지 못해서 그때 받은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행복해요. 제 꿈이 이뤄졌잖아요."
박인재 감독은 ‘쪽집게’ 점쟁이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걸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전부를 걸었기에 그의 열정을 하늘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카트 리그의 마이더스 손!
박인재 감독에게 붙는 또 하나의 수식어는 ‘마이더스 손’입니다. 처음 그가 키운 박인수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최강의 선수로 군림했을 때는 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재혁이 문호준, 유영혁, 박인수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을 모두 꺾고 개인전에서 우승컵을 차지하자 관계자들은 박인재 감독의 선수 육성 능력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습니다.
박인수와 이재혁은 데뷔 때부터 될 성 부른 떡잎으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포텐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두 명에게 ‘만년 유망주’라는 좋지 않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좀처럼 벽을 깨고 나오지 못한 모습이었죠.
그러나 박인재 감독을 만나면서 두 사람은 몇 년이나 달고 다니던 ‘만년 유망주’ 타이틀을 떼고 당당하게 우승자로 거듭났습니다. 박인재 감독은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요? 연습실에서 온라인에서 잘해도 경기장에만 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하는 선수들이 태반인 e스포츠에서 박인재 감독의 마법은 많은 게임단이 훔치고 싶은 ‘물건’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물어 보시는데 사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 선수들 관리만 잘 해주고 연습만 독려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처음 저와 함께 숙소 생활을 시작했던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아쉬워요. 지금이라면 더 잘 지도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첫 시도는 박인재 감독 말 대로 망(?)했지만 실패를 바탕으로 박인재 감독은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했습니다. 우선 그는 심리적인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선수들의 피지컬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박인재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은 심리적인 부분일 것이라고 간파했습니다.
"스포츠 심리학부터 시작해 다양한 심리학책을 끼고 살았어요. 선수들의 심리를 분석했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죠. 박인수에게 공부하고 연구한 것을 적용했더니 곧바로 성과로 이어지더라고요. 그리고 곧바로 듀얼X에서 박인수는 개인전과 팀전 모두 우승하더라고요. 사실 제 지도 방법도 좋았겠지만 그것을 흡수하는 것 역시 선수의 능력이에요. 박인수가 그런 능력이 있었던 거죠."
심리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를 마친 박인재 감독은 이제 엑셀 파일과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까지 모두 데이터로 전환해 그만의 파일을 만들어 낸 것이죠. 그리고 남들은 생각해 내지 못하는 전략들을 생각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락스 랩터스는 경험 없는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4강에서 최강 실력을 자랑하는 팀들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선전했습니다. 락스를 상대한 팀들 모두 이긴 후에도 가슴을 쓸어 내릴 정도로 어려운 승부였다고 고백했습니다.
팀전에서의 선전은 개인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재혁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죠. 문호준, 박인수, 유영혁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을 제치고 차지한 우승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재혁이 우승하는 데 일조한 것은 바로 박인재 감독이 데이터 안에서 찾아낸 ‘붓’이라는 카트였습니다.
"(박)인수가 습득 능력이 좋다면 (이)재혁이는 제가 머리 속으로 그리고 있던 완벽한 플레이를 곧바로 눈 앞에서 보여줘요. 의심스럽더라도 우선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처음 제가 ‘붓’을 제안했을 때 (이)재혁이의 표정이 기억나요. 마치 ‘제가 우승하는 것이 싫으신가요’라는 표정이었어요(웃음)."
박인재 감독은 데이터를 통해 ‘붓’이 분명히 통할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이재혁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죠. ‘붓’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상황이 된다면 네가 쓸지 말지 선택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이재혁은 개인전 결승전에서 고심 끝에 ‘붓’을 꺼내 들었고 그렇게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이재혁은 우승 후 인터뷰를 통해 "박인재 감독님이 ‘붓’을 추천해 주셨을 때 귀를 의심했다"며 "하지만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오늘 그것이 증명된 것 같다. 앞으로 감독님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인터뷰를 보고 빵 터졌어요. 끝까지 (이)재혁이는 ‘붓’을 의심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저를 믿어줬어요. 그리고 우승까지 해냈죠. 아마 앞으로 제 말을 더 잘 들을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선수들이 찾아내기 어려운 전략을 발견하고 선수들에게 연습시키고 새로운 플레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감독의 역할 아닐까요?"
◆카트 리그에 무슨 감독이 필요하냐고요?
사실 카트라이더 리그에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에이스 선수와 아이템전 잘하는 선수 한 명, 그리고 스위퍼 역할을 잘하는 선수와 말 잘 듣는 선수 한 명이면 우승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하지만 박인재 감독은 카트라이더 리그에도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유망주를 발굴해서 그들이 문호준-유영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키워내고 그로 인해 새로운 팬층이 생기면서 선수들이 꾸준히 유입되는 살아있는 리그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감독이 필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선구자 역할을 하겠다는 엄청난 사명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그저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것뿐이에요. 하지만 일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낍니다(웃음). 이제는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카트라이더 리그에도 코칭 스태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게이머를 그만 둔 뒤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박인재 감독은 이제 완전체가 된 모습입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선수들을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지 배웠고 그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은 듯 보였습니다. 2년 동안 선수만큼 연습하고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결실은 맺은 것입니다.
"제 머리 속에 있는 수많은 스포츠 심리학 지식과 제 노트북에 저장된 엑셀 파일에 2년 간의 노력에 담겨 있어요. 카트라이더를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우승자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사실 (이)재혁이가 우승할 때 울컥하더라고요. 그동안의 내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인지 마음도 뿌듯하고요."
요즘 박인재 감독은 더 많은 선수들을 지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선수들 역시 그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죠. 하지만 규정상 로스터가 6명 이하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선수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박인재 감독 입장에서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재혁이 우승 후 선수들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짐을 느껴요. 우리 팀 선수들 조차도 저를 대하는 모습이 달라졌는걸요(웃음). 앞으로도 잘하는 팀을 계속 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팀에 들어가 선수들의 실력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잘하는 팀이 늘어나는 것은 카트라이더 리그 전체에 좋은 것이잖아요. 그게 제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너무 낭만적인 것은 아니냐고 박인재 감독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인재 감독은 누구보다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이루고 있죠. 이미 망상같은 꿈을 이룬 그에게 도전 못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낭만적인 박인재 감독의 꿈을 지켜보는 것, 카트라이더 리그를 보는 또다른 재미가 되지 않을까요?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