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몰렸을 때 손을 내민 사람의 고마움은 잊기 어렵습니다. 특히 꿈을 갖고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일이 무산될 위기에서는 더욱 그렇죠.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입성만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락헤드(전 VSG) 선수들과 권재환 감독에게도 지난 12월 한 달은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투자자가 투자를 철회했다는 이유로 공중 분해 위기에 몰렸던 락헤드 선수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OZ게이밍 이개성 대표였습니다. 다들 낯선 사람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개성 대표는 e스포츠에서 꽤 유명한 인사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클럽팀에게 손을 내밀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PC방 기반 아마추어 대회인 ‘웨슬’을 지속적으로 개최, 누구보다도 풀뿌리 e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죠.
이개성 대표는 현재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카트라이더 팀을 운영하고 있는 게임단주기도 합니다. 2019년에는 긱스타에게 네이밍 스폰을 받아 긱스타라는 이름으로 팀을 운영했죠.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을 보유하게 되면서 수면에 떠오른 것이지 사실은 비주류 게임을 하고 있는 클럽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키다리 아저씨’였습니다.
뒤에서 숨어서 키다리 아저씨 역할만 하던 OZ게이밍 이개성 대표는 논란의 중심이었던 VSG 게이밍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VSG 게이밍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에게는 가뭄의 단비였을 것이고 팬들에게는 공중 분해될 뻔한 팀을 구해준 은인으로 기억되겠지요.
정작 이개성 대표는 이런 수식어가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그저 어려움에 처한 선수들을 돕고 싶은 가벼운 마음이었을 뿐이라는 이야기만을 전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가벼운 마음이 누구에게는 추운 겨울, 어떤 이불보다도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인 것이죠.
"처음 OZ PC방을 개업하면서 색다른 마케팅을 해보고 싶었고 e스포츠를 좋아했던 기억을 되살려 PC방 기반 아마추어 리그를 진행했던 것이 e스포츠와의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마추어 리그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도움을 요청했고 그를 뿌리치지 못해 오버워치 팀을 도와주게 됐고 그 일들이 점점 커지면서 지금의 상황까지 왔네요. 어떤 방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기에 지금의 상황이 사실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합니다."
이 대표는 락헤드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자신이 도울 일이 없을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사실 락헤드에 관심 있는 클럽 팀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제시한 금액도 꽤 컸기에 이 대표는 자신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네요.
"제가 제시한 조건은 한가지였습니다. 지금 있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조건이었죠. 아마도 다른 게임단은 시드권만 사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시드권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선수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강했기에 선수단 유지를 조건으로 걸었죠."
기업간의 인수합병에서도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건 기업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른 기업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한다 해도 기업의 목표와 비전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직원들을 지켜주는 것이 더 높은 가치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권재환 감독과 선수들에게도 이 점이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모양이었습니다. 다른 팀의 경우 시드권만 산 뒤 선수단을 개편할 생각이 컸지만 이 대표는 권재환 감독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선수단의 꿈을 함께 지켜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합니다.
"권 감독을 몇 차례 만나면서 진중하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섰어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내던진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질줄 알았고 꼭 필요한 말을 잘 전달하는 능력이 있더군요. 선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카리스마도 가지고 있고요. 이 사람이라면 나는 필요한 일들을 지원만 해줘도 된다는 믿음이 섰습니다."
권재환 감독과 이개성 대표는 그렇게 서로의 의지와 꿈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한 배를 타기로 결정했죠. 권 감독도 이 대표에게도 쉽지 않았던 여정이었고 앞으로는 더욱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승강전에 올라가게 된다면 정말 꿈만 같겠죠. 하지만 선수들에게 그런 것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선수들이 이전보다는 좋은 환경에서 게임하게 돕고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 제 역할이겠죠. 최선을 다해 선수들의 꿈이 이뤄지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선수단과 함께 좋은 게임단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이개성 대표. 앞으로 그가 e스포츠에서 보여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는 기존 틀에서 벗어난 투자 방식과 선수단을 대하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요? 새로운 세대가 보여주는 새로운 게임단과 새로운 e스포츠 문화를 응원해야 할 시기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뿐만 아니라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카트라이더 팀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부탁 드립니다. 응원해 주시면 더 좋고요. 항상 선수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는 게임단으로 만들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