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환 감독 역시 지난 12월은 연말 분위기를 느낄 새도 없는 한 달이었습니다. 내년 시즌을 준비하던 VSG 선수단은 갑작스럽게 팀 해체를 통보 받고 목표를 잃어버렸고 급하게 락헤드 플레이어즈라는 이름으로 챌린저스 예선에 나섰지만 승강전에서 고배를 마시며 불투명한 미래를 직면해야 했죠.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권재환 감독과 선수단에게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동화처럼 위기에 몰린 락헤드에, 오즈 게이밍의 이개성 대표가 손을 내밀었지요. 오즈 게이밍이 VSG의 시드권을 인수하며 권재환 감독은 힘겨웠던 2019년을 뒤로한 채 따뜻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1월, 오즈 게이밍의 인수 소식이 전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난 권재환 감독은 여전히 분주해 보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몸도 바쁘고 마음도 불편하게 보냈다는 권재환 감독에게서는 그동안의 고충의 느껴졌습니다. 다사다난 했던 지난 한 달여를 돌이켜보는 권재환 감독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여전히 아픔이 묻어있었죠.
"VSG와 계약하고 선수단을 꾸리고 시즌 준비를 하던 와중에 팀 측에서 운영할 수 없다는 통보를 뒤늦게 받았어요. 하필 그 날이 챌린저스 예선 신청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예선에 나갈 거라고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 예선 날은 저희에게 의미가 없는, 그냥 하루였을 뿐인데 부랴부랴 신청을 해서 나가게 됐죠.
연습이 제대로 안된 상태로 예선에 참가를 하게 됐는데 하필 또 숙소를 나와서 준비를 하게 되는 바람에 힘들었죠. e스포츠협회와 나이스게임TV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연습 자체는 가능했지만 집중력이 제대로 살 수는 없는 상황이었어요. 승강전을 마친 후에는 VSG와 서로간의 합의점을 찾았어요. VSG도 그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해주고 저희도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이 나왔죠. 오즈 게이밍 이개성 대표님이 저희를 인수를 결정해 주신 덕분에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해요."
락헤드라는 이름으로 어렵게 참가하게 된 챌린저스 예선은 동기부여이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VSG와 합의 할 때도 시드권을 최우선으로 이야기할 만큼 경기를 뛴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상황이었지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마음 편히 임할 수 있는 대회는 아니었죠.
"그 당시에는 절박함이 정말 컸어요. 정말 갑자기 예선에 참여하게 된 거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예선을 치르기 전에 저희를 도와주신 나이스게임TV와 협회도 있었고 응원도 받다 보니까 정말 떨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했죠. 저희를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도와주신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보람을 느끼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실망시키기 싫어서 정말 절박했어요. 예선 지면 군대 간다는 생각이었죠.
예선 마지막 경기를 2대1로 올라갔는데 뒤에서 보니 선수들의 부담감이 엄청 느껴지더라고요. 저희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와주신 분들을 뒤에 업고 경기를 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챌린저스에 참가하게 돼서 다행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지금에야 나름 미소도 지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지만 권재환 감독에게는 정말 힘들 수밖에 없는 시기였습니다. 권재환 감독은 당시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이유로 책임감을 꼽았습니다. 선수들도 많이 힘든 상황에서 자신이 무너질 수 없다는 책임감이 권재환 감독을 지탱해주었죠.
"선수들도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잘 버텨내줬어요. 정말 병원에 다닐 정도로 많이 힘들어하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제가 힘들다고 멘탈이 박살나거나 하면 선수들은 어떻겠어요.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그러면 안 되니까 많이 스스로를 다잡았죠. 개인 성향이 긍정적인 것도 있고 책임감도 있었죠. 누군가는 중심이 돼야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어려움 속에서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는 권재환 감독에게 마음의 짐이 무거웠을 듯했지만 그에게 이런 짐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e스포츠에서 지도자를 맡게 된 순간부터 이는 권재환 감독의 마음에 새겨진 의무였죠.
"짐을 지라고 있는 직책이 감독이잖아요. 감독들이 반 농담 삼아 자조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원래 잘 되면 선수 공으로 넘어가야 하고 힘든 건 감독이 다 안고 가라고 있는 자리가 감독이라고 해요. 당시 미성년자인 선수가 있기도 했지만 성인과 미성년자의 관계를 떠나서 감독과 선수는 일종의 보호의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감독과 선수를 사제관계라고 표현을 하는 게 그런 의미가 되게 크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보호하고 가르치고 이끌어나가는 것처럼 감독도 그런 의무가 있는 직책이니까 그 상황에서 제가 선수단을 잘 케어하고 중심이 돼서 선수를 끌고 나가야 하는 건 제가 감독을 맡은 순간부터 저에게 부여된 일종의 의무였어요. 그러다보니 그냥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죠. 당연히 선수보다 제가 버틸 수 있는 한계가 높아야 하니까요."
오즈 게이밍과는 협회의 김철학 사무총장의 연결로 만나게 됐습니다. 사실 오즈 게이밍 외에도 챌린저스 코리아 시드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곳은 여럿 있었습니다. 몇몇 곳들은 권재환 감독에게 직접적으로 인수 의사를 전하기도 했죠. 오즈 게이밍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권재환 감독은 단호하게 답변했습니다.
"시드권 관련해서 제게도 전화가 왔지만 인수 조건으로 선수를 선별해서 인수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그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이런 상황에 같이 나와서 고생하고 있는 선수들을 한 명이라도 빼고 간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였어요. 당장 선수의 실력을 떠나서 그 선수는 두 번 버려지게 되는 건데, 그건 절대 합의할 수 없는 조건이어서 다 거절했죠.
다행히 이개성 대표님은 선수단 전원을 인수해 주신 거라 바로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선수들을 떼어놓는다는 건 생각할 가치가 없는 일이었어요. 그러면 저희도 선수를 버리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넨 이개성 대표는 권재환 감독과 선수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개성 대표는 따뜻하고 섬세하게 팀을 감싸며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신뢰를 얻어냈습니다.
"선수들이 대표님과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이개성 대표님에 대한 신뢰도가 정말 높아요. 처음 오즈 게이밍에 합류했을 때 아무래도 환경이 달라서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보니 제가 하루 이틀 전에 체크해서 대표님께 말씀드리려고 이야기를 꺼냈거든요. 그런데 대표님은 이미 다 파악하시고 어떻게 해결할지까지 말씀하셔서, 이건 제가 신경 쓸게 없겠구나 싶었죠."
한 차례의 고비를 넘긴 권재환 감독은 다시 챌린저스 준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개성 대표는 성적이 아닌 꿈을 응원하기 위해 지원에 나섰다고 밝혔지만 권재환 감독은 "프로의 본질은 성적"이라며 2020년 성적을 위해 칼을 갈고 있었죠. MVP 출신 코치, 선수들이 많이 모인 만큼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권재환 감독은 "각자 이유가 있어서 구성했는데 모아놓고 보니 전 MVP더라고요"라고 웃으며 "다른 선수들도 엄청 빠르게 적응해서 화기애애하게 연습하고 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물론 성적은 시즌 돼봐야 아는 거지만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장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한동안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연습 내용도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지금은 많이 폼 되찾아서 연습하면서 하루하루 달라지고 나아지는 게 눈이 보이죠. 팬분들도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챌린저스의 수준은 갈수록 상향평준화되는 것 같아요. 거기서 경쟁력을 갖춰야 LCK 문턱이라도 두드려볼 수 있는 것이 맞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만큼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제 이개성 대표님이 저희를 잘 지원해주고 계시니 외부적으로 힘들게 하는 문제는 거의 해결이 됐고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자질을 잘 활용해 최대한 좋은 성적 내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
새해는 어떤 해가 됐으면 좋겠냐고 묻자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답하는 권재환 감독의 모습에서는 마치 아버지나 선생님같은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와 함께 "새해는 승격하는 해가 됐으면"이라고 덧붙이는 권재환 감독은 변함없이 승리를 갈구하는 감독의 모습이었죠.
"2020년 안에 승격하는 게 목표에요. 회사의 대표가 어떤 팀을 창단하고 하는 과정은 자선이 아니라 투자잖아요. 저희를 믿어주신 만큼 투자를 헛되지 않게 하는 게 저희 몫이라서 적절한 부담감은 아무리 안주시려 해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압박을 안 준다고 부담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부담이 없으면 발전할 수도 없고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결국 권재환 감독도, 팀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LCK를 향한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감사한 마음을 거듭해서 전한 권재환 감독은 감사 인사로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잘 되고 있을 때 도와주신 분들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사람이 극한으로 몰리고 힘든 상황을 겪다 보니 그럴 때 응원 해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사람이 힘들 때, 다른 것을 바라지 않고 손을 내미는 게 정말 힘든데 그걸 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협회와 나이스게임 TV, 오즈 이개성 대표님은 물론이고 계속 중재해준 라이엇 게이밍과 어쨌든 마지막에 선수단을 위해 도움 되는 결정을 해준 VSG에게도 모두 감사해요. 그리고 팬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월급을 받기 전이라 당장 택시비도 없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팬분들이 성금을 모아서 전달해 주셔서 선수들이 정말 감사해했어요. 이 자리를 빌려 팬분들에게 선수들의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김현유 기자 hyou0611@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