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박스 게이밍 김승태 인터뷰 이후 너무 오랜 기간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김승태가 지목한 선수는 자신과 비슷한 운명을 가졌기에 더욱 정이 가고 궁금하다는 한화생명e스포츠의 '문심(문호준의 마음에 들어있는 최고의 후배)' 1호, 최영훈 입니다.

조금은 의아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두 선수는 꽤나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영훈은 카트라이더 리그에 처음 출전했을 때 김승태와 한 팀에 속했습니다. 두 선수가 한 팀에서 활약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겠죠.

기억이 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6년 카트라이더 리그 배틀로얄에서 두 선수는 쏠라이트 인디고 소속으로 한 팀을 이뤘고 이렇다 할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8강에서 탈락하며 팬들뿐만 아니라 관계자들 뇌리에서도 잊혀졌습니다.

사실 그 인연으로 김승태가 최영훈을 지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팀을 이룬 적이 있지만 두 선수는 아직까지는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는 사이죠. 김승태의 지목 이유는 팀내 2인자 역할을 오래 하면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 자기와 비슷해 연민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승태의 지목을 받은 최영훈은 그저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렇게 따로 인터뷰를 하는 것도 처음이고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처음이기에 최영훈은 이런 상황들이 그저 신나는 모양이었습니다.

DES=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는 것 같아요.

최영훈=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따로 길게 인터뷰 하는 것은 처음이라 더 떨리고 긴장되는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설레고 좋네요.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DES=워낙 말을 잘하잖아요. 원래는 인터뷰를 잘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더 인터뷰가 능숙해 지는 것 같더라고요.

최영훈=저도 오래 된 프로게이머잖아요(웃음). 신흥 강호 세력도 아니고 '빅3'도 아니지만 그래도 (김)승태형과 비슷한 포지션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절 지목한 것 같기도 하고요.

DES=김승태와 인연이 있는 줄 몰랐어요.

최영훈=사실 제가 의외로 운이 진짜 좋은 선수거든요. 단체전으로 바뀐 뒤 계속 성적이 좋았는데 재미있게도 딱 한번 8강 탈락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김)승태형이랑 같은 팀이었어요(웃음). 그때 너무 빨리 떨어지기도 했고 따로 연습하거나 그런 상황이 아니라 친해질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저랑 승태형이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거에요.

DES=8강에서 탈락했을 때면 정확하게 언제에요?

최영훈=카트라이더 리그가 팀전으로 처음 다시 시작할 때에요. 실제 레이싱 선수와 레이싱 모델들이 감독과 매니저 역할을 맡았을 때죠. 그때는 선수들이 팀을 짜는 것이 아니라 감독들이 순서를 픽했죠. 그때 서주원 감독님이 승태형과 저를 데려왔었어요.

DES=가장 좋지 않은 시절을 함께 한 인연이네요(웃음).

최영훈=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인연입니다(웃음).

DES=원조 문호준의 아들이잖아요. 어떻게 문호준과 인연이 닿은 거에요?

최영훈=아까 말했듯 쏠라이트 인디고 시절 서주원 감독님과 인연을 맺은 기억이 있었죠. 그리고 다음 시즌 (문)호준이형이 리그에 복귀했어요. 그때 다시 팀을 선택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는데 (서)주원이형이 호준이형네 팀을 데려간 거죠. 마침 한 명이 부족했는데 당시 저를 좋게 봐주신 감독님께서 호준이형에게 저를 추천했데요.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됐어요.

DES=온라인에서 최영훈 선수의 경기를 보고 감동해 연락한 건 아니었군요(웃음). 그래도 당시 팀에서 성실하게 했으니 서주원 감독이 좋게 본 것 아닐까요?

최영훈=제가 형들 말을 잘 듣습니다(웃음). 어떤 이유였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절 좋게 봐주신 것만은 분명해요. 다행히 호준이형도 저와 함께 하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 인연이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DES=요즘 문호준의 아들 타이틀을 박도현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잖아요. 불안하지 않아요?

최영훈=원조는 저니까요(웃음). 아무리 제2의 문호준의 아들이 나타난다 해도 1호는 접니다. 솔직히 불안한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에요. 요즘 (박)도현이 '문초리(문호준이 든 회초리)'를 앞세워 원조를 위협하고 있어 걱정이 되긴 해요. 그래도 (문)호준이형이 저를 아직까지는 예뻐해 주시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DES=최영훈이 나타나기 전에는 사실 팀에서 궂은 일을 하는 선수들은 주목 받지 못했잖아요. 최영훈이 꾸준히 문호준 옆에서 성장하면서 새롭게 '최영훈 라인'을 구축한 것 같아요.

최영훈=카트라이더 리그가 팀전으로 바뀌면서 초반에는 러너(에이스)로 관심이 모두 몰렸어요. 각 팀의 에이스들이 아니고서는 사실 주목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팀전을 해보면 알겠지만 러너가 1위를 하고 상위권으로 갈 수 있는 것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시즌 초반에는 그런 묘미들을 살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러너뿐만 아니라 저나 (김)승태형처럼 스위퍼 역할을 하고 희생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도 재조명되고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단순히 버스를 타는 선수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우리 역시 팀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이제는 팬들이 알아주시거든요. 옵저버 분들도 예전에는 앞으로 치고 나가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잡아줬는데 요즘은 스위퍼들의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시면서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사실 초반에는 좀 서운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어요. 나 역시 팀에 분명한 역할이 있고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버스 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했어요. 저도 관심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죠(웃음).

DES=그래도 지금은 아무도 최영훈이 '버스 탄다'는 말은 하지 않잖아요. 스피드전과 아이템전 모두 가능한 전천후 플레이어로 성장한 것 같더라고요.

최영훈=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가능해진 셈이죠. 제 플레이가 주목 받기 시작하면서 각 팀에서 '제2의 최영훈'을 찾아야 우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더라고요. 지금 상위권 팀에서 보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선수가 반드시 한 명은 있어요. 샌드박스에는 김승태 선수가 있고 최근 락스에서는 송용준 선수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DES=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최영훈만의 영역을 구축했네요. 이 정도면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한 것 아닌가요?

최영훈=우선 시작이 문호준과 함께였잖아요. 이미 성공한 게이머죠(웃음). 앞으로 더 성공하려면 한화생명e스포츠 유니폼을 입고 우승해야 할 것 같아요. 개인전보다는 팀전에서 정말, 진심으로, 온 맘 다해 우승하고 싶습니다.

DES=개인적인 목표는 물어보지 않아도 되겠네요(웃음).

최영훈=개인전 우승도 물론 명예롭지만 카트라이더가 팀 리그로 열리고 있기 때문에 팀전 우승만큼 간절하지는 않아요. 꼭 우승하고 싶어요. 이제 4강 풀리그가 열릴 때까지 계속 긴장 유지하면서 연습하는 일만 남았죠. 어떻게든 이번 시즌에는 꼭 우승하고 싶습니다.

DES=그래도 최영훈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최영훈='제2의 최영훈'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선수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는 아니지만 팀에 우리 같은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 팀 성적이 달라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시킬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제가 그 선두주자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는 친구들에게 '제2의 최영훈'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최영훈이라는 이름이 중계진들에게, 팬들에게 더 많이 언급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DES=이은택의 부재로 아이템전 에이스 역할을 본인이 해야 할 것 같은데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최영훈=괜찮아요. 어차피 예전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문)호준이형도 있고 (배)성빈이와 (박)도현이를 잘 다독여서 풀어가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예전에 처음 아이템전 할 때도 정말 힘들었지만 그때 배워둔 것들이 다 자산이 됐거든요. 물론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해봐야죠. 어깨가 무겁기도 하지만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DES=앞으로 어떤 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최영훈=옆에서 (문)호준이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어요. 이 사람처럼 되기는 어렵겠지만 이 사람과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앞으로도 '문호준 아들 1호'는 최영훈입니다(웃음). 옆에서 보필하고 팀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DES=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멋진 선수로 남기를 바랄게요.

최영훈=저를 이 자리까지 만들어 주신 건 팬들의 응원 덕분인 것 같아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힘들 때도 버틸 수 있었어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팬들이 알아주고 응원해 주시니 힘이 나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응원 부탁 드립니다. 저 역시도 정말 열심히 노력할게요. 잊혀지지 않는 선수가 되도록 말이에요. 이번 시즌, 꼭 결승전에서 만나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DES=릴레이 인터뷰 다음 주자는 누구를 지목할 건가요?

최영훈=많은 선수들이 인터뷰를 했는데 사실 제 차례가 오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선수는 다행이 지목이 안됐더라고요. 락스의 송용준을 지목하고 싶어요. 요즘 팀내 위치를 보면 제 초창기 시절이 생각나거든요. 저랑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선수인지 궁금해요. 송용준 선수 이야기를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