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 업계는 지금 팀을 찾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지난 11월 17일 오전 9시부터 계약이 만료된 선수들이 다른 팀과 협상할 수 있는 신분이 되면서 6~70% 정도의 선수들이 FA(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었다. 2021년부터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적용되기 때문에 10개 팀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챌린저스 코리아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역대급으로 많은 인원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르든, 팀이 사라져서 자격이 생기든 FA로 풀렸다.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든 챌린저스 코리아(이하 CK)든 서머까지 로스터에 들어 있던 선수들의 행보에 대해서는 소속팀들이 SNS를 통해 소식을 알려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상당히 많다. 스프링 시즌을 마친 뒤 팀에서 나온 선수들, 혹은 1년 정도 쉰 선수들은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진 상태다. 한화생명e스포츠 유니폼을 입고 2020년 스프링까지 뛰었던 미드 라이너 '템트' 강명구가 그 케이스다.
◆"'고스트' 장용준 보며 자극 받았다"
'템트' 강명구는 ESC 에버 출신이다. 2016년 IEM 시즌10 월드 챔피언십을 통해 선을 보인 강명구는 챌린저스 코리아 스프링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곧이어 열린 승강전에서도 깔끔한 플레이를 펼치면서 LCK에 등장했다. 승격 첫 시즌에 5승13패로 9위에 머무르면서 또 다시 승강전을 치러야 했지만 CJ 엔투스를 꺾고 살아 남았다. ESC 에버는 bbq 올리버스가 네이밍 후원사로 들어오면서 상승세를 타는 듯했지만 하위권에 머물렀고 2018년 서머에서 2승16패로 최하위를 기록한 뒤 승강전에서 탈락하며 챌린저스로 떨어졌다. 강명구는 2019 스프링을 앞두고 한화생명e스포츠와 계약하면서 LCK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었지만 bbq 올리버스의 챌린저스행은 가슴 아픈 기억으로 갖고 있다.
ESC 에버가 승강전을 통과할 때 원거리 딜러는 '로컨' 이동욱이었고 bbq 올리버스 시절에는 '고스트' 장용준이었다. 이동욱과 장용준 모두 2020년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했고 이동욱은 징동 게이밍 소속으로 8강, 장용준은 담원 게이밍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동욱, 장용준과 같은 팀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갖고 있던 강명구는 소회가 남달랐다.
2020년 스프링 시즌을 마친 이후 한화생명e스포츠를 떠나 고향인 충북 진천에 내려와서 솔로 랭크를 통해 실력을 끌어 올리고 있는 강명구에게 한솥밥을 먹던 두 선수의 활약상은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던 그 선수들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컨' 이동욱의 피지컬이 좋은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는데 성장할 때까지 참는 능력을 갖췄더라고요. '고스트' 장용준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bbq 시절에도 맵을 보는 능력이 좋긴 했지만 이제는 몸을 사려야 할 때와 강하게 밀어야 할 때를 조절하는 아는 선수로 거듭났어요."
이동욱의 롤드컵 8강, 장용준의 우승은 '야인'이 되어 버린 강명구에게는 더욱 "경기에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간절하게 만들었다.
◆외롭지만 하루 10시간 훈련
스프링 시즌을 마친 뒤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계약을 종료한 강명구는 외국 진출을 알아봤지만 실패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외국 팀이 시즌 중에 한국 선수나 지도자를 영입한 사례가 상당히 많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된 탓에 비자 발급 등의 절차가 복잡하고 어려워지면서 외국 팀들은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지만 루틴은 바꾸지 않았어요. 팀에 있을 때처럼 새벽까지 게임을 했고 오후 2시 정도에 일어나서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량을 채우려고 노력했죠."
혼자 해내야 하는 훈련이었기에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강명구는 패턴이 흐트러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꿋꿋하게 버텨냈다.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을 때에는 새벽 훈련 도중에 축구 경기를 시청하거나 간간이 축구 게임을 하면서 지냈다.
"팀을 나온 뒤로 솔로 랭크만 해야 하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워낙 숫기가 없는 편이라 친구들이 많지도 않고 개인 방송도 거의 하지 않아서 지쳐 가고 있었는데 중국인 친구가 생겨서 듀오로 랭크 게임을 많이 했어요. 중국어를 거의 모르는데 서로 핑 찍어가면서 계속 했어요. 그 친구 덕에 지치지 않고 계속 게임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챌린저까지 가기도 했죠."
고등학교 때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시작한 강명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ESC 에버 김가람 감독의 눈에 띄어 숙소에서 테스트를 봤고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ESC 에버와 bbq 올리버스, 한화생명e스포츠까지 햇수로 5년 동안 팀 게임을 중심으로 훈련해왔기 때문에 솔로 랭크만으로 컨디션을 유지하고 경기 감각을 끌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5명이 확실하게 갖춰진 상황에서 시끌벅적하게 이야기하면서 다른 팀과 스크림을 한 뒤에 코칭 스태프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일이 고마운 일이라는 걸 고향에 내려와서 홀로 게임하면서 깨달았어요."
◆"뛰고 싶다"
2016년 데뷔 이래 한 번도 소속 팀 없이 지내본 적이 없는 강명구는 6개월 동안 야인으로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국내외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면서 플레이 스타일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강력한 라인전은 물론,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맵을 넓게 봐야 하는 것이 트렌드라는 것도 알고 있다.
"피지컬과 시야를 두루 갖춘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더라고요. 코칭 스태프가 제게 자주 이야기하셨던 부분인데 팀 안에 있을 때에는 잘 느끼지 못했거든요. 밖에 나와서 게임을 하고 직접 분석까지 하는 과정에서 제 부족한 점을 깨달았고 계속 보완하고 있어요."
bbq 올리버스 시절부터 한화생명e스포츠까지 강명구에 대한 평가는 일관됐다. 피지컬 능력을 갖고 있고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캐리력'도 갖고 있지만 터뜨리지 못하고 무너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준수한 라인전 능력을 갖고 있고 상황 판단도 좋지만 동료를 활용하고 키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강명구 또한 이에 대해 알고 있다. 6개월 동안 수많은 솔로 랭크 경기를 하면서 질 때마다 '만약 내가 팀을 꾸려 게임을 했더라면 이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명예 회복이나 권토중래, 백의종군과 같은 거창한 단어는 제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목표를 내세우기 보다는 팀에 들어가서 팀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그 안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습니다. 뛰고 싶습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