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는 2018년 전까지 리그 사진은 내부 자료로 활용했다. 그렇지만 롤파크가 개장한 2019년 LCK 스프링부터 본격적으로 전문 사진가를 두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LCK 등 라이엇게임즈의 e스포츠 리그를 담당하는 사진사는 ‘셀레그래피’ 이세현 대표다.
해외에서 만난 많은 프리랜서 사진가들은 기자에게 ‘사진을 촬영하는 건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만난 이세현 사진가도 자신을 ‘기록 사진가’라고 했다. 사진 기록을 남기는 그는 “사진을 사용하는 이에게 가장 알맞은 결과물을 전달하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Q, 인터뷰는 처음인 거 같은데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셀레그래피'라는 기록 사진 전문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겸 사진가 이세현이라고 한다. 국가 기념식은 물론 국내외 기관과 기업들의 행사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와 협업 관계로 LCK의 공식 기록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Q, 어떻게 사진가 길을 걷게 됐는지 궁금하다.
A, 원래 문헌정보학으로 기록물을 다루는 사서가 꿈인 시절이 있었다. 군 복무 이후 기록물을 다루는 거보다 기록을 남기는 일이 더 적성에 맞다는 걸 뒤늦게 알게 돼 사진을 복수 전공하게 됐다. 사진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하자 성적도 더 잘 나왔다. (웃음)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여행사에 취업해 좋아하는 여행과 사진 두 가지 토끼를 잡으려고 했는데 사기를 당해 실패했다. 이후 지인의 요청으로 영화 출연 및 사진 촬영 감독으로 동행했고, 일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국가행사 프리랜서 사진사로 활동했다.
개인적으로 사진가로 성공하기 위한 5주년 계획을 세웠다. 2년간은 사진 개인 작업과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인맥과 경력을 쌓았고 3년 차에는 개인전과 함께 특정 카메라 브랜드의 앰배서더(홍보대사) 활동을 했다. 4년 차에는 국가 기념식 촬영이 늘어나면서 기록 분야에서 전문성을 조금씩 인정받게 됐다. 5년 차에는 기업 고객들과의 거래를 위해 개인사업자로서 정식 개업해 촬영 제안이 늘어났다.
Q, 국가 기념식 촬영을 주로 하다가 e스포츠와 연을 맺은 이유를 들려줄 수 있나?
A, 2018년 LCK 서머 스플릿 결승전과 같은 해 한국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기록 의뢰를 받은 게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와의 첫 만남이었다. 오래전 일이라서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행사 기록 포트폴리오를 본 담당자분이 전화 오퍼를 준 거로 기억한다.
리그오브레전드가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할 때 친구들이 함께하자고 했는데 응하지 않아서 초창기 LoL 행사 기록을 할 때는 게임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3년이 지난 뒤 LoL을 하는 지금 당시 촬영했던 사진 이미지를 돌려보면 재미있다는 감정이 느낀다.
LCK가 롤파크에 오면서 라이엇게임즈 코리아도 고정적으로 하는 사진작가가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없었다. 플리커(온라인 사진 관리 및 공유 응용 프로그램) 등이 없어서 내부 자료로 사용했지만 내가 합류한 이후 사진에 대한 쓰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Q, 본인이 하던 분야와 e스포츠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A, 개인 작업과 국가 기념일 행사, 축제, 기업 내 기념행사 등 상업 사진으로 주된 활동을 하는 공적 행사의 영역은 '도큐먼트(document)', 즉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e스포츠 행사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다. 사건 발생 현장이나 행사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풍경을 담아내는 점에서는 큰 차이점이 없다. 덕분에 좋아하는 일과 돈을 벌 수 있는 요즘 세대에서 이야기하는 '덕업일치'를 이룬 상황이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다. (웃음)
Q, 그래도 미세한 차이점은 있을 거 같다.
A, 작은 차이점을 이야기한다면 먼저 다른 행사와 비교해 인물에 좀 더 많은 포커싱을 해야 한다. 국가 기념식의 경우 전반적인 행사 구성에 대한 기록이라면 e스포츠는 각 선수의 모습을 기록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개인적인 견해로 타 행사 사진들이 '기록과 보존'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둔다면 e스포츠 사진은 이를 보는 팬들과의 소통을 통한 상호작용에 초점을 둔다고 생각한다.
팬들에게 좀 더 양질의 이미지를 제공해 시각적 만족감을 전달하고 팬들은 사진을 활용한 2차 창작물(치어풀, 트레이싱)을 제작해 피사체인 선수들에게 전달하거나 공유함으로써 보다 다양하게 활용된다는 점은 다른 부분이다.
Q, LCK 사진에서 화제는 기자실로 가는 통로에서 진행되는 점프 포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A, 항상 타 리그의 기록 사진과 다르게 흥이 많은 한국인, LCK 특유의 색다른 부분을 나타내기 위해 항상 보다 더 임팩트 있고 강렬한 포즈를 연구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점프 샷이다. 어두운 실내 공간에서 촬영이라 실패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이런 촬영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지닌 선수들의 강렬한 사진은 국내외 팬들을 즐겁게 하는 외적 요소라고 본다.
실제 사진을 프린팅해 치어풀에 활용한 팬들도 많았고, 선수들도 자신의 사진을 메신저 배경화면으로 설정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어 굉장히 만족스럽다. 2021시즌이 끝난 지금도 다음 시즌에는 어떤 색다른 포즈를 주문할지 고민 중이다.
Q, e스포츠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아쉬운 부분은 무엇인가?
A, 선수들과의 공감, 완전한 인터랙션(interaction, 둘 이상의 대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행동)이 이뤄질 때 좀 더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또는 멋있는 사진이 나온다. 말 그대로 '이 사진 잘 나왔다'고 할 수 있는 사진이다. 벌써 4년째 보고 있지만 아직도 사진을 회피하는 선수가 있는 건 늘 아쉽다. 또한 결승전마다 중계 영상이 우선이기에 현장 사진 기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다. 가장 적절한 장소에서 가장 완벽한 이미지를 얻고자 하는 갈망이 늘 기록자로서 마음을 아쉽게 한다. 이건 e스포츠 사진기자분들도 공감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Q, 본인을 사진작가가 아닌 '기록 사진가'라고 지칭하던데.
A, 솔직히 저는 사진 작가로 불리고 싶지 않다. 사진가가 좋다. 천만 명 이상이 카메라를 가진 상황서 사진작가로 너도나도 말하고 있기에 명칭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 개인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직책, 의미는 크게 없다. 저도 사진을 하지만 기업을 대상으로 일하는 사장의 의미가 중요하다. 오히려 사진가가 되게 적절한 표현인 거 같다. 작가로 불러주는 것도 감사하다. 롤파크에서 만나는 선수, 직원, 밖에서 바라보는 분은 저를 기자로 알고 있다.(웃음)
Q, 본인이 사진 찍었을 때 최고의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A, 특정 선수가 최고라고 말하기엔 각자의 매력이 다르다. ‘표식’ 홍창현(다일엑스), ‘크로코’ 김동범(리브 샌드박스), ‘도브’ 김재연(kt 롤스터), ‘칸’ 김동하(담원 기아) 선수와 ‘고스트’ 장용준(담원 기아) 선수 등이 사진을 촬영할 때 정말 재미있고 적극적이다. ‘페이커’ 이상혁(T1), ‘쵸비’ 정지훈(한화생명e스포츠), ‘덕담’ 서대길(농심 레드포스), ‘라스칼’ 김광희(젠지) 선수 등은 인물이 좋고 사진도 굉장히 잘 나온다.
Q, 북미와 유럽, 중국에서도 라이엇 게임즈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사진작가가 많다. 사진으로서 본인만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A, 사진을 사용하는 이에게 가장 알맞은 결과물을 전달하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록을 수행하는 입장을 지닌 ‘나’라는 사진가의 장점에 대해선 이미지를 소비하는 분. 예를 들어 라이엇 게임즈, 팬, 선수, 미디어 등이 평가할 거로 생각된다. 각국 사진가들의 개성이 모두 다르기에 ‘누가 잘한다, 못한다’를 스스로 표현할 수는 없다. 조용히 나는 나의 할 일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물이 소비자를 만족시키면 된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사진에 대한 반응을 끊임없이 모니터링한다. 이와 같은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이미지 소비층과의 소통이 가끔 이뤄지는 부분은 개인적인 강점이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부족한 부분은 개선하고 긍정적인 부분은 더욱 강화하려고 노력한다.
Q,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A, 사진 이미지에 대한 팬분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면서 입으로 담기 힘들 정도의 가혹한 비난과 욕설이 특정 선수에게 가해지는 모습을 자주 본다. 기록하는 자로서 LCK를 수년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느낀 점은 리그를 운영하는 사람, 선수, 게임단 관계자들도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우는 ‘사람’이라는 거다.
경기에서 지거나 은퇴한 뒤 무대 뒤에서 흘리는 선수들의 눈물을 보면 저도 가슴이 시큰할 때가 있다. 가장 가까이서 이들을 지켜보는 저에게 그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다.
승리와 패배가 공존하는 경기장에서 누군가는 행복을, 누군가는 분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e스포츠 시장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다면 리그 구성원들에게 '범인색출'과 같은 조롱과 비방이 아닌 응원과 사랑을 보내줬으면 한다.
김용우 기자 (kenz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