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에도 그 자막은 다양한 패러디 물로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16년 전 자막 아이디어를 냈고 직접 제작했던 이민호 PD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을 연출하다가 라이엇 게임즈로 가서 롤 파크 LCK 아레나 건설과 LCK 방송 제작에 관여했다. 종로 종각역 근처에 있는 건물 안에 있던 웨딩홀과 은행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e스포츠 경기장과 PC방으로 바뀌는 과정에 그가 있었다.
이민호 PD는 지난해 라이엇 게임즈를 떠나 펍지 e스포츠로 이직했다. MBC에서 시작한 PD로서 커리어는 잠시 중단됐지만 크래프톤 e스포츠의 모든 걸 책임지는 총괄 자리를 맡게 됐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펍지 네이션스컵 현장에서 만난 이민호 e스포츠 총괄은 모든 팀을 오프라인 무대로 데리고 오기 위해 전세기를 준비하는 등 대회 뒷이야기와 함께 앞으로 펍지 e스포츠의 발전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Q, 2019년 장충체육관에서 첫 번째 대회를 연 이후 3년 만에 펍지 네이션스컵을 진행했다. 소감을 말해달라.
A, 2019년 장충체육관에서 하고 난 뒤 코로나19로 인해 대회를 하지 못했다. 네이션스컵은 e스포츠 씬에서 펍지 e스포츠만이 가진 특별함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호응도 굉장히 좋았는데 코로나19로 단절돼 아쉬웠다. 라이엇 게임즈에 있으면서도 장충체육관에 가서 직접 경기를 봤는데 빈말 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엄청난 오프닝 무대부터 전 세계 팀을 커버하는 옵저버 시스템 등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2022년 대회를 앞두고 회사 내에서 클럽 대항전을 좀 더 강화할까 아니면 우리가 가진 중요한 자산 중의 하나인 국가 대항전 브랜드를 더 발전시킬까 고민했는데 김창한 대표님께서 '네이션스컵'이라는 브랜드를 가져가는 것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저희도 거기에 대해 내부적으로 동의를 했기에 대회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
Q, 2022년 펍지 e스포츠 계획이 공개된 뒤 눈길을 끌었던 대목이 네이션스컵의 부활이었다.
A, 어찌 보면 당연했던 거 같다.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그 포맷을 고민해야 했다. PCS(펍지 컨티넨탈 시리즈), PGC(펍지 글로벌 챔피언십), PGI.S(펍지 글로벌 인비테이셔널.S) 등 여러 브랜드가 나왔는데 이걸 한 번 정리할 필요성도 느꼈다. 그렇다면 미드 시즌에 어떤 대회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연말에는 PGC라는 확고한 브랜드가 있기에 우리가 결정해야 할 건 미드 시즌 대회였다. 클럽 대항전 등 다른 포맷을 할지 아니면 네이션스컵을 할지 약간 고민됐지만 전반적으로 네이션스컵을 가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팬들의 그리움도 컸고 우리의 IP(지적 재산권)와 핏이 잘 맞는다는 확신도 있었다.
Q, 대회 개최지를 태국 방콕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동남아시아 지역은 PC 게임보다는 모바일 게임이 강세라서 펍지 모바일 대회가 잘 어울릴 거 같았다.
A, 동남아시아가 모바일 시장이 강하지만 PC 게임을 기준으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 중에 하나다. 그거 때문에 결정한 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유럽, 아시아 등 여러 지역 후보군으로 두고 검토를 시작했다. 좀 고민한 뒤 글로벌 제작사를 대상으로 비딩(bidding, 계약을 따내기 위한 응찰)을 했는데 유럽, 아시아, 동남아시아 여러 제작사들이 대회 유치 및 제작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여줬다.
독일, 스웨덴, 터키 등 여러 국가가 있었고 특히 조지아는 총리가 직접 꼭 하고 싶다는 친서를 보낼 정도였다. 동남아시아, 동유럽을 두고 고민하던 중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대회 개최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했다. 전쟁의 리스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역, 그리고 우리가 이번에 네이션스컵 붐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역을 생각하다가 태국 방콕을 결정하게 됐다.
Q, 태국 정부에서는 네이션스컵에 대한 의지나 지원이 있었나?
A,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우리가 생각한 거보다 큰 호응이 있었다. 예를 들어 대회장 앞에 지스타처럼 부스를 설치했는데 공간이 좁아서 들어가기 부족할 정도였다. 사실 저기도 작은 공간이 아닌데 스폰서 부스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와서 만들어진 이벤트 존도 있어서 그렇다. 현지에서 열기는 우리가 기대한 거보다 큰 거 같다. 경기가 오후 6시(현지시각)에 시작됐고 이벤트존은 2시에 오픈됐는데 오전 10시부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대기했다.(4일 동안 현장을 찾은 인원은 2만 600명이라고 한다.)
Q, 네이션스컵을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인가?
A, 개인적으로 세 가지 정도 중요한 요소를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유관중이었다. 작년에 코로나19 시기에도 불구하고 PGI.S, PGC 등 국제 대회를 거의 유일하게 모두 치러냈다. 작년에도 준비했지만 (유관중을) 하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하려고 했다.
두 번째는 가능한 모든 팀을 오프라인으로 데리고 오려고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에 중국 팀이 온라인 참가를 결정하면서 아쉽게 100%를 달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안정적으로 고퀄리티 대회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과거 정전 사태(MET 아시아시리즈)도 있었지만 유관중, 팀들의 오프라인 참가에 가장 적합한 곳이 태국 방콕이라고 생각했다.
Q, 앞서도 언급됐지만 중국 팀의 온라인 참가에 대해 아쉽지 않은가?
A, 개인적으로 월드컵, 올림픽 등 전통 스포츠나 e스포츠 이벤트를 수백 번 해봤지만 이번 대회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역대급 난이도였다. 그러기에 아쉬움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어찌어찌 개최지를 급하게 바꾸면서도 잘 준비한다고 생각했는데 상하이시가 봉쇄됐다. 사실 우리는 오프라인 개최를 위해 전세기 띄우는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옵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Q, 전세기라...최소 수억 이상이 들어가는 거로 아는데.
A, 전세기를 준비했지만 시가 봉쇄됐기에 선수단의 출국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선수단이 대회를 치르기 위해선 최소 2주의 격리가 필요했다.(참고로 해외에서 중국으로 입국 때는 2+1주, 중국 지역을 이동하기 위해선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한다) 대회가 15일에 미디어데이, 16일에 개막이기에 5월 31일이 정말 데드라인 중의 데드라인이었다. 그렇지만 불운하게 6월 1일에 봉쇄가 완화됐다.
우리 입장서는 공항으로 가느냐 아니면 다른 도시로 이동하느냐를 놓고 선택해야 했다. 공항으로 가더라도 출국을 장담할 수 없었다. 중국 선수도 중요한 선수들이기에 이들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선수들도 대회에 참가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거라도 받아들이겠다고 서약했다. 그래서 사전에 다른 팀과 중국 팀의 온라인 참가에 대해 합의를 했고 핑(게임 응답 속도) 등 다른 부분에 있어 약간의 불이익을 받고 진행했다.
태국에서는 핑이 30ms 정도 나오는데 중국은 4~50ms 정도다. 그나마 광저우가 가장 낮다. 광저우에서는 저희가 수십 번 정도 테스트했다. 다른 대회의 경우 가장 안 좋은 쪽으로 핑을 맞추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태국 현지에 맞추며 중국 팀에게 높은 핑을 감수하도록 했다. 대회를 앞두고 심판 파견, PC 세팅, 연습 등에서도 동일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중국 팀을 참가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어쨌든 광저우로 선수단을 이동시켰고 동일한 조건에서의 연습 등 공정한 환경을 기본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했기에 온라인으로 참가를 결정하게 됐다. 전세기까지 고려해서 너무나 큰 아쉬움이 있지만 다음 대회부터는 오프라인으로 같이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Q, 현지 싱가포르에서 진행 중인 와일드리프트 아이콘스에 중국 팀이 오프라인으로 참가하고 있어서 더욱 아쉬울 거 같다.(와일드리프트에 참가하는 중국 팀은 6월 2주차에 싱가포르로 떠났다)
A, 거의 동일한 시기라서 마음이 아팠다. 이게 클럽 대항전이었다면 선택권이 있었지만 올스타 개념이라서 선수들이 있는 위치도 다 달랐다. 그래서 선수들을 일단 한 번 모아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5월 31일까지 결정해야 하기에 약간 불운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펍지 e스포츠는 대회서 공정한 진행을 했으며 다른 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걸 말하고 싶다.
Q, 펍지는 다른 게임 리그와 달리 국가대항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같다.
A, 분명히 콘셉트적인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저희 같은 경우는 IP 자체가 리얼리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동시다발적으로 경기하는 측면이 다른 스포츠와 비교할 때도 국가대항전 콘셉트가 잘 맞는 거 같다. 전투의 스타일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의 특색들이 더해진다면 스토리텔링으로 봤을 때도 좀 더 풍부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제가 합류하기 전인 2019년 대회서도 시도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우리가 버리기에는 아까운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Q, 2년 동안 e스포츠 총괄로 일하면서 달라진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A,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내부 문화다. 실패하더라도 그걸 통해 배우면 된다는 문화가 있다. 그런 부분을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보니 굉장히 시행착오가 많았다. 대회별 브랜드 위상이나 티어, 구조 등에서는 아직 적립이 덜 된 부분이 있다. 이번 네이션스컵을 통해 우리는 미드 시즌에는 네이션스컵, 시즌을 결산하는 PGC, 다른 S급 대회를 기준으로 A급 대회를 중간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예측 가능한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또한 클럽 대항전에 비해 국가대항전인 네이션스컵은 선수를 뽑아야 하고 컨트롤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회 운영도 클럽 대항전보다 난이도가 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다.
Q, 데일리게임이 창간 14주년을 맞았다. 총괄이 봤을 때 10년 뒤 펍지 e스포츠는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A, 64명이 동시에 플레이하는 것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수많은 스포츠 경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봤지만 펍지 e스포츠가 최고 수준의 난이도인 거 같다. 그런 어려움, 즐거움 속에서도 아직 펍지 e스포츠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배틀로얄이 가진 콘텐츠에 대해선 좀 더 보여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극한의 긴장감, 생존의 짜릿함 등 이 부분에 대해 밖으로 더 보여주고자 한다. 크래프톤 안에는 배틀 그라운드뿐만 아니라 여러 라인업을 갖고 있다. 우리는 e스포츠를 최소 30년 이상은 할 것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떤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 장병규 의장님의 말에 큰 인상을 받았다.
펍지 e스포츠 자체도 지금처럼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이 될 거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꿈꾸는 미래는 펍지뿐만 아니라 크래프톤의 다양한 게임을 활용해 e스포츠 종합 생태계를 꾸려보는 것이 10년, 15년 뒤의 목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용우 기자 (kenz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