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게임즈는 지난해 11월 시즌4 롤드컵을 한국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6월 새롭게 발표된 롤드컵 관련 내용은 16강을 동남아에서 개최하고 8강부터 한국에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발표에 팬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 뿔난 팬심은 랜선을 타고 분기탱천했고, 같은 생각을 가진 팬들을 보이콧이란 이름 아래 똘똘 뭉치게 했다.
팬들의 반응을 보며 공감한 부분은 상실감이다. 롤드컵은 LOL 대회 중 가장 큰 대회다. 각 지역 최고의 팀들이 모여 '세계 최강'을 가리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다. 롤드컵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최고의 이벤트다.
이런 대회를 한국에서 열겠다고 했을 때 국내 e스포츠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특히 한국에서 글로벌 LOL 대회가 단독으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 역시 한 명의 게이머로서 이같은 라이엇게임즈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막상 롤드컵 기간이 다가오자 단독 개최가 아닌 분산 개최라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국에서 열릴 롤드컵만 기다리고 있던 국내 팬들, 특히 '직관러'들에게는 분명 비보다. 기대가 크면 실망감은 더 큰 법이다. 분산 개최를 애초에 밝히는 것과 뒤에 밝히는 것은 확실히 피부에 와닿는 바가 다르다. 단독 개최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팬들에게 라이엇게임즈의 이번 결정은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사기 충분했다.
그동안 국내 팬들이 라이엇게임즈와 LOL에 보낸 지지와 사랑은 어마어마했다. 오죽했으면 LOL은 PC방 점유율 1위를 100주동안 기록했다. 때문에 더 많은 팬들은 상실감을 넘어 라이엇게임즈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라이엇게임즈가 왜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다. 라이엇게임즈가 LOL을 축구, 야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스포츠로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LOL을 좋아하는 e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라이엇게임즈는 LOL이라는 게임을 서비스하는 게임사다. LOL이 망하면(플레이하는 이용자가 없다면) 스포츠고 뭐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몇몇 팬들은 라이엇게임즈의 이번 결정을 '갑질'로 규정했다. 애초에 공지를 했던 안했던 어쨌든 팬들 입장에선 라이엇게임즈가 일방적으로 말을 바꾼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롤드컵 분산 개최를 결정한 이면에는 게임의 수명, 즉 게임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불안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야구나 축구가 향후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게임을 기반으로 한 e스포츠는 다르다. 화무십일홍, 인불백일호라 했다. 지금 LOL이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언제 어떻게 인기가 식을지는 모를 일이다.
드림핵이나 WCG 등 국제 e스포츠 대회에서 이용자가 없어 종목까지 폐지된 사례는 분명히 있다. 대만, 싱가포르를 예선 장소로 지정한 결정을 오롯이 '게임사'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는 것이다. LOL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라이엇게임즈로 하여금 분산 개최라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어찌보면 라이엇게임즈는 을 아닌 을같은 존재인 것이다.
'플레이어 포커스'를 강조하는 라이엇게임즈에게 있어서 이번 사건은 분명 치명적이다. 의도가 어찌됐던 라이엇게임즈는 한국 팬심을 상당수 잃었다. 라이엇게임즈도 한국 팬들의 이러한 큰 반발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인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라이엇게임즈는 언제나 이용자를 먼저 생각했다는 점이다.
시즌2, 시즌3 롤드컵 기간 동안 라이엇게임즈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만났던 브랜든 벡 대표나 마크 메릴 공동 창업자, 더스틴 벡 부사장 등 라이엇게임즈의 핵심 인물들은 언제나 "한국의 e스포츠 인구, 인프라, 열기가 부럽다"고 했다.
라이엇게임즈의 사과문에 기재돼 있는 "한국 게이머들이 십 여 년 이상 경험해온 'e스포츠의 열기를 직접 느낀다'는 경험을 전세계 플레이어들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는 말이 결코 허언은 아닐 것이다.
[데일리e스포츠 강성길 기자 gillni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