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유난히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해외 진출이 잦지만 작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외 팀 감독을 맡은 이가 있으니, 바로 이인철 감독이다. 제닉스 스톰에서 매니저를 했던 이인철 감독은 2013년 9월 가레나와 e스포츠 인스트럭터로 계약했다. 그 업무의 일환으로 베트남 LOL팀을 지도하고 있는 것.
데일리e스포츠는 해외 진출 1호 한국인 지도자 이인철 감독에게 해외 생활부터 지도자 생활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래는 이인철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
Q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A 저야 늘 잘 있습니다(웃음). 오랜만에 한국 LOL팬들께 인사드릴 수 있어서 반갑고 기쁘네요.
Q 처음엔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A 아무래도 언어가 다르다보니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가장 크죠. 그 외에는 회사에서 여러가지로 돌봐주고 있는데다 이젠 적응도 되서 많이 힘들진 않아요. 베트남 사람 다 됐죠(웃음). 한밤 중에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잘 수 있을 정도? 외적으로는 외로움이 크죠. 한국 음식도 그립고요.
Q 혹시 지금도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어려움은 있는 건가요?
A 제가 영어 혹은 베트남어를 모국어처럼 하지 않는 이상 항상 어렵죠. 통역이라는 필터를 끼고 팀을 운영하다보면 생각보다 엉뚱한 일이 많이 생겨요.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외국으로 나간 지도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을 만한 게 통역 문제에요. 막상 가레나에 와 있는 한국인 지도자도 심성수 감독까지 하면 벌써 네 명째인데 아직도 통역을 구하는 중인 경우도 많아요.
Q 언어 문제 말고도 해외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힘든 점이 분명 있을텐데요.
A 해외는 특히 팀 별로, 혹은 지역 별로 스타일이 좀 많이 다른 편인데요. 그 스타일이라는 것을 극복할만한 마인드 정립이나 노력이 좀 부족해요. 특히 킬에 집착하는 게임을 한다던가, 한국에서는 누가 봐도 손해인 바론 트라이를 자꾸 한다던가 하는 식이죠.
Q 성향 문제라는 말씀이시군요.
A 그렇죠. 그런데 그게 바뀌어야 게임이 바뀔 수 있는 거고, 그 부분은 진짜 뼈를 깍는 노력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도 그 부분은 원하는 만큼 올라오질 않아요. 사실 LOL은 스타크래프트와는 달라서 개개인 피지컬 요소에 많이 좌우되는 게임은 아니잖아요.
Q 요즘은 운영이나 판단 능력, 개개인의 센스가 부각되고 있죠.
A 센스는 개인 영역이니 제쳐두고, 운영은 가르치면 되는 건데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초중반 작은 선택들부터 후반의 큰 오더들까지 항상 논리적으로 움직여야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여긴 항상 '하던대로 한다' 이런 게 좀 많아요. 목적없이 그냥 전투를 벌인다던가 말이에요. 사실 동남아가 LOL 시드권 국가 중 가장 약한 전력으로 평가되는 이유가 이런 운영에서의 강점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Q 그래도 9개월 동안 해외 팀을 지도하면서 보람을 느꼈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일단 성적이 날 때죠. 베트남에서는 이번 서머 시즌부터 공중파에서 GPL이 방영돼요. 장을 보러 나갔는데 간혹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나보다'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웃음).
Q 공중파에서 GPL이 방영될 정도면 베트남에서도 LOL 인기가 엄청난가봐요.
A 인기는 있는 것 같아요. 주말만 되면 서버가 뻗어요.
Q 연습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한국은 밥 먹고 연습만 하잖아요(웃음).
A 처음엔 아니었지만 여기도 겨우 그정도로 올라왔어요. 제가 압박을 했다면 한국처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걸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자율 시간을 좀 주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선수들은 파김치가 되곤 하죠.
Q 만약 처음부터 연습 시간을 엄청 빡빡하게 잡으면 어땠을까요?
A 그렇게 못해요(웃음). 문화가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게이밍하우스가 있는데 출퇴근하는 선수들도 있어요. 반발하진 않겠지만 적응을 못해요.
Q 그래도 처음보단 연습 시간을 엄청 늘렸다는 말씀이시죠?
A 네. 식사와 쉬는 시간을 빼면 11시간을 연습해요.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죠.
Q 얼마 전 심성수 감독이 TPA에 부임했는데요. 혹시 GPL에서 한국인 지도자에 대한 필요성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나요?
A 사실 제가 오기 전에는 코치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없었어요. 그냥 눈 앞에 잘하는 선수가 있다면 영입하고 보는 식의 움직임만 있었죠. 이후로 1년이 지났고, 지금 심성수 감독을 영입한 것을 보면 확실히 한국인 지도자에 대한 니즈는 생겼다고 볼 수 있겠죠.
Q 어떻게 보면 감독님이 자리를 잘 잡았고, 그래서 TPA 쪽에서도 '우리도 한국인 감독이 필요하다'라고 느낀 걸 수도 있겠네요.
A 네(웃음). 지난 윈터 시즌 4강 이후 가레나 대만 CEO가 제게 TPA 감독직을 제의한 적이 있어요. 확실히 그 때 TPA에 감독이 필요하다는 뉘앙스를 받았어요.
Q 그럼 혹시 GPL에 한국인 지도자가 더 들어올거라고 내다보시나요?
A 네. 가능성은 높아요. 다만 여기 면접은 정말 빡빡해요(웃음).
Q 감독님이 GPL에 가면서 개인적으로 세웠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제가 맡은 팀을 롤드컵에 진출시키는 거죠. 이번 시즌에 우승을 하지 못하면 힘들 것 같아요.
Q 그래도 감독님이 처음 부임하셨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확실히 강해졌겠죠?
A 네. 그건 인정받고 있는 부분이에요. 솔직히 처음에는 소위 '멘붕'을 많이 했어요. 5미드는 기본이고 샤코도 심심찮게 나왔어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도박수를 초반엔 많이 썼어요. 그 시절을 떠올리면 눈물이 나네요(웃음). 게임을 이해하면서 플레이하게끔 지도했어요. 덕분에 기초적인 전력도 많이 올라왔고요.
Q 해외팀 감독을 맡으면서 느낀 좋은 점, 안좋은 점을 하나씩만 꼽아주세요.
A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여기 온 게 인생의 전환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하기 나름이지만 팀을 잘 장악하고 키운다면 그만한 보람이 없죠. 도와주시는 분들, 선수들 모두 저를 존경해 줍니다. 전 돈 보다 개인의 성취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지금 팀을 이끌어가는데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힘든 해외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고생할 때 보다는 생활 여건이 좀 더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는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해야 돼요. 저를 고용한 사람들은 제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귀신 같이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냉정하게 판단하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것도 외국인 감독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Q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마디 해주세요.
A 감독이나 코치로 해외에 진출하려면 한국에서의 경험과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해요. 그걸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요. 먼 훗날에는 지도자 양성에 힘을 쏟고 싶어요. 여러 사람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선수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지도자 양성체계를 만드는 게 한국은 물론 전세계 e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당분간은 사이공 조커스, 사이공 판타스틱파이브의 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지만요(웃음). 한국에 계신 LOL 팬들께 좋은 모습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강성길 기자 gillni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