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올여름 IM에 입단한 김태일은 달랐다. 이번 시즌 신드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김태일은 럭스라는 파격적인 선택으로 승리까지 이끌면서 팬들의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켰다. 매번 최종 예선에서 탈락하며 절치부심한 김태일. 탈락의 쓴 잔을 마시면서도 김태일은 더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 김태일은 더 연습에 매진했다. 올여름 '프로즌'이라는 자신의 아이디를 팬들에게 알릴 수 있었던 자양분이었던 셈이다.
선한 눈매 속에 감춰진 열망을 봤다. 아직까진 실수도 잦고 완벽하진 않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투지가 있다. 그렇게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언제나 도전을 즐기는 김태일을 만났다.
◆'빠른별' 덕분에 생긴 프로게이머의 꿈
김태일은 학창 시절 게임을 잘했다. 어떤 게임을 해도 학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김태일은 고2 여름방학 때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을 처음 접했다. 650점으로 시작했지만 1년이 지나고 어느새 2000점대 이상까지 레이팅이 올랐다. 그러다 게임 내에서 프로게이머까지 만났다. '빠른별' 정민성이었다.
당시 정민성은 국내 최고의 미드 라이너로 꼽혔다. 비록 게임 내에서 만난 것일 뿐이지만 김태일의 심장은 요동쳤다. 최강으로 불리는 상대와의 맞라인전. 단지 취미로 LOL을 즐기던 김태일의 부담감은 더욱 심했다. 그런데 웬걸, 정민성을 상대로 솔로 킬을 냈다.
"그 때 정민성 선수가 한창 '데마시아'를 외치고 있을 때였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솔로 킬을 따낸 거죠.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프로게이머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 어떻게 보면 운명 같아요. 그 때 정민성 선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이후 김태일은 LOL에 매진했다. 하지만 게임을 할 때마다 뒷통수가 따끔거렸다. 부모님의 따가운 시선이 김태일을 마구 찔러댔던 것이다. 김태일은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 PC방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래서 숙소가 있는 아마추어 팀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연습에만 매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로벌피딩이라는 아마추어 팀으로 롤챔스 서머 2013 예선에 참가했던 김태일은 MVP 블루를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올해 초 에일리언웨어에 입단했지만 롤챔스 본선의 문턱은 높았다. 그리고 서머 시즌을 앞두고 IM에 적을 두게 된 김태일은 1년만에 본선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프로게이머를 반대했던 부모님도 아들의 방송 경기를 보기 위해 직접 용산 e스포츠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김태일은 보란듯이 MVP를 따내며 부모님의 따스한 시선에 보답했다.
"이상하게 그 날은 뭘해도 되는 날이었어요. 부모님이 오셔서 그랬나봐요(웃음). 뿌듯했죠. 아쉽게 16강에서 탈락했지만 여기서 멈출거면 시작도 안했어요. 지금은 IM이 약체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제가 강팀으로 만들고 싶어요."
◆데마시아!
김태일은 이번 시즌 팬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바로 럭스를 택해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럭스는 대회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됐다. 모든 스킬이 논타기팅인 데다가 쿨타임까지 긴 럭스는 사용하기도 까다롭고, 초반에 말릴 경우 복구가 상당히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태일은 해냈다.
럭스를 어떻게 꺼내게 됐냐고 묻자 김태일은 당시를 떠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는 삼성 블루. 지난 시즌 우승팀이다. 그래서 IM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다양한 밴픽을 준비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밴픽이 흘러갔다. 그런데 럭스가 나오기로 한 상황대로 밴픽이 진행됐던 것이다.
"정말 희박한 확률이었는데 그대로 밴픽이 이뤄지는 거예요. 사실 밴픽만 그렇게 짜놓고 럭스는 연습도 안했어요(웃음). 동료들이 오리아나와 신드라 얘기를 했지만 전 조용히 럭스를 달라고 했어요. 다행히 경기가 잘 풀렸어요."
알고보니 김태일에게 럭스는 각별한 챔피언이었다. 초창기부터 럭스를 주챔피언으로 잡았던 김태일은 시즌3에도 럭스를 250판 이상 선택했고, 평균 KDA도 5로 상당히 높았다. 김태일이 가장 처음 롤챔스 예선에서 꺼냈던 챔피언도 럭스였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럭스는 참 다루기가 어렵다. 논타기팅 스킬이 모두 빗나갔을 때 럭스만큼 무력한 챔피언도 없다. 김태일은 럭스를 하면서 논타기팅 스킬을 맞추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그래서 적중률이 높았던 것이다.
"스킬을 날렸을 때 상대가 피하는 방향을 기억해요. 그리고 다음에는 그 방향으로 쓰죠. 무조건 맞아요. 심리전이긴한데 사람의 습관은 무섭거든요(웃음). 하지만 매번 무빙이 다른 선수가 있어요. '페이커' 이상혁 선수와 이지훈 선수에요. 이 선수들은 스킬을 맞추기가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확고한 신념
김태일은 조금 독특하다. 주류 챔피언은 하기가 싫단다. 비주류 챔피언들도 충분히 대회에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데카이저까지 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동료들의 반대를 뚫기란 쉽지 않다. 공식전에서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면 LOL에 있는 모든 챔피언을 대회에서 써보고 싶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직스-오리아나 구도에요. 정말 팀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이상 직스나 오리아나는 잘 선택하지 않아요. 그들이 딱히 1티어 챔피언이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다른 챔피언들도 자신만의 장점이 있어요. 다음 시즌에는 좀 더 다양한 챔피언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동료들과 얘기가 잘 되면요(웃음)."
1년 동안 롤챔스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던 김태일이지만 이번 서머 시즌을 통해 확실히 한 단계 성장했다. 국내 최정상 미드 라이너인 SK텔레콤 T1 K '페이커' 이상혁, 삼성 갤럭시 블루 '다데' 배어진은 김태일에게 있어 넘어야할 존재다. 하지만 이번 시즌 김태일은 이상혁, 배어진과 직접 맞부딪혔고, 그들의 플레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거창한 말은 안 할래요. 대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미드 라이너가 되고 싶어요. 최강을 만나도 밀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게 최강이겠네요(웃음). 내년에는 좀 더 좋은 성적을 내 해외 대회에도 나가보고 싶어요. 세계 무대에 서서 열광적인 해외 팬들의 환호를 받는 것, 그게 목표예요. 그러려면 지금 바로 연습을 해야겠네요(웃음)."
[데일리e스포츠 강성길 기자 gillni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