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에어 스텔스에도 '갓'으로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바로 '트레이스' 여창동이다. 여창동은 데뷔 초만 해도 팀의 구멍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솔로 랭크에서도 특이한 챔피언을 자주 고르는 탓에 '트롤러'라는 이미지까지 있었다. 그랬던 여창동이 지금은 팬들에게 '창동갓'으로 불리고 있다.
여창동은 플레이가 화려하진 않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결정적인 순간 '슈퍼 플레이'를 펼친다. 이번 시즌 여창동의 플레이를 보면 왜 그가 '창동갓'으로 불리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창동은 노력파다. 재능은 다른 선수들보다 뒤떨어지지만 챔피언 연구와 상대 분석, 연습으로 이를 커버한다. 누구도 하지 않는 챔피언을 대회에 꺼내 캐리도 곧잘 해내는 이유다.
언제나 팬들에게 유쾌하고 재미있는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여창동을 만났다.
◆잊지 못할 2014년 여름
2013년 스프링 시즌에 데뷔한 여창동은 올여름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지난 시즌 본선에도 오르지 못 했던 진에어 스텔스는 이번 시즌 16강 조별 예선에서 CJ 블레이즈를 탈락시키고 8강에 올랐다. 비록 패했지만 8강에서 삼성 갤럭시 블루를 강하게 몰아붙이는 인상적인 경기력을 뽐냈고, NLB 4강에서는 SK텔레콤 T1 K와 호각세를 이루면서 차기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끔 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롤챔스 4강까지 바라볼 수 있었지만 상대가 삼성 블루였다. NLB에서도 4강과 3~4위전에서 연달아 패했다. 좀 더 높은 성적이 손에 잡힐듯했지만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NLB 4강과 3~4위전은 두 경기 모두 블라인드 모드에서 패해 아쉬움이 더 컸다.
"롤챔스 8강에 오르면서 집중력이 좀 떨어진 것 같아요. 뭔가 목표가 없어진 느낌이었어요. 삼성 블루와의 경기가 아쉽긴 해요. 삼성 블루와 스크림을 많이 했거든요. 많이 이기기도 했고요. 그런데 대회에서 스크림 때 지던 패턴과 똑같이 패하고 말았어요. 그걸 보완했어야 하는데. 아마 다음 시즌엔 다를 거예요(웃음)."
이번 시즌 개인 기량이나 팀워크 측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는 말에 여창동은 손사래를 쳤다. 여창동은 아직도 자신은 물론 팀 전체적으로 많은 부분이 타 팀들과 비교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고, 다음 시즌 비상을 위해 칼을 갈고 있다.
"그동안 많이 부족했죠. 지금에서야 이제껏 부족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보여요. 앞으론 쭉쭉 올라갈 일만 남았어요."
◆트레이스=에디슨?
'트레이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챔피언은 역시 렝가다. 여창동은 렝가가 비주류 챔피언일 때부터 렝가를 쓰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여창동은 비주류 챔피언을 많이 했는데 이 때문에 '트레이스=트롤러'라는 공식이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여창동은 아마추어 시절 왜 대세 챔피언을 잘 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있었다. 자신이 봤을 때 재미있어 보이는 챔피언을 주로 플레이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시절 다양한 챔피언을 섭렵한 탓에 여창동의 챔피언 폭은 상당히 넓다. 이게 프로가 된 후 빛을 보기도 했다. 사이온이나 아트록스로 상대의 허를 찌르면서 승리를 이끈 것이다.
"사파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래서 프로 데뷔하면서 아이디를 굳이 바꾸지 않은 거에요. 프로게이머가 된 이후 이상한 걸 많이 못해서 아쉽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비주류 챔피언이라고 무시하면 안되요. 충분한 연습을 거치면 훌륭한 픽으로 거듭나거든요. 아트록스도 그렇게 나온 거에요. 아트록스만 80판 정도 죽어라 연습했거든요. 연습할 시간만 있으면 재미있는 픽을 많이 꺼낼 수 있을 같아요."
그렇게 남들과는 다른 픽을 자주 선보인 여창동은 '에디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롤챔스 윈터 13-14 2차 예선에서 당시 아무도 쓰지 않던 제이스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를 중계한 이현우 해설위원은 항상 생각지도 못했던 픽을 꺼내드는 여창동을 에디슨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원래 여창동은 아마추어 때 정글러였다. '액토신' 연형모와 프로 생활을 함께 시작하면서 포지션이 겹치기에 상단 라인으로 옮긴 여창동이지만 현재 보직에 불만은 없단다. 정글러에 대한 욕심이 있긴 했지만 여창동은 리 신을 못한다.
"몇 번 해봤는데 리 신은 진짜 못하겠어요.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리 신은 뭔가 손도 빨라야하고 날아다녀야 하는데 전 그런 걸 잘 못해요. 그래서 정글러는 깔끔하게 포기했죠. '클템'형처럼 될까봐요(웃음)."
◆노력파 여창동
여창동은 데뷔 초를 회상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때는 말 그대로 게임을 즐기는 아마추어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솔로 랭크만 했다보니 팀 게임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대세 챔피언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 때 굉장히 심각했어요. 이상한 것 밖에 할 줄 몰라서요(웃음). 또 처음에 5대5 팀 게임을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거에요. 처음에는 '어디에 와드가 있다' 정도 빼곤 말을 한 마디도 못했어요. 말을 하면서 게임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죠. 그래도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면 좋잖아요. 계속 생각을 했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하고 말예요."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여창동이 '창동갓'으로 불리게 된 것이. '창동갓' 칭호에 대해 여창동은 언제나처럼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까진 과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창동은 아마추어 중에서도 개인 기량만 놓고 보면 프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사람이 정말 많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1, 2년 경험이 쌓이면 자신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였다.
"보면 '갓카오', '매라신'처럼 다 아이디에 '갓'이 붙는데 전 이름이에요. 예전에 연습실에서 가끔 동료들이 그렇게 부르긴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좋긴 한데 욕을 먹을 때도 이름부터 나오니 그건 별로일 것 같아요(웃음). 진짜 '갓'에 어울리는 선수가 되도록 더 열심히 해야죠."
'창동갓' 여창동의 노력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재미있는 선수로 남고파
LOL 선수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항상 마지막에 목표를 묻곤 한다. 그 선수가 어떤 목표를 갖고 있고, 그 목표를 향해 어떻게 달려갈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의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가 된다던가, 롤드컵 우승을 거두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여창동은 역시나 달랐다. 자신이 아마추어 시절 주로 골랐던 챔피언들처럼 말이다. 여창동은 '재미있는 선수'가 목표다. 새로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유재석이 나온다고 하면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처럼 여창동도 경기를 앞두고 늘 팬들에게 재미있는 픽 혹은 플레이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제가 나온다고 하면 팬들이 '오늘은 트레이스가 어떤 재미있는 픽을 꺼낼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싶어요. 전 그런 게 좋아요. 그래도 일단 프로게이머인 이상 우승 한 번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옴므' (윤)성영이형처럼 우승할 때까지 계속 달릴 거에요. 성영이형이 29살까지 했죠? 전 아직 좀 남았네요(웃음)."
[데일리e스포츠 강성길 기자 gillni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