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비션' 강찬용은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하지만 총명한 소년이었다.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을 넘어 LoL에서 미래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LoL이 스타크래프트의 뒤를 잇는 게임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는 강찬용은 2011년 MiG 블레이즈에서 프로 게이머 활동을 시작했다.
강찬용의 재능은 대단했다. 미드 라이너로 활동한 초창기, CS 수급 능력을 바탕으로 라인전과 교전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뽐낸 강찬용은 LoL 더 챔피언스 2012 초대 우승과 2013 시즌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말그대로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였다.
하지만 최고라는 자리가 영원하진 않았다. SK텔레콤 T1의 '페이커' 이상혁으로 대표되는 재능파 선수들이 리그에 대거 합류해 강찬용의 입지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강찬용에게 찾아온 뼈 아픈 시련. 이는 역설적이게도 영웅담의 시작이 됐다.
◆강찬용의 첫 번째 길, 도전
"잘 하는 미드 라이너 선수들이 워낙 많았어요. 그리고 스스로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동료들을 믿고, 도움을 받았어야 했는데 의존하지 못했죠. 자립하고자 하는 마음은 부담으로 변했고, 게임이 조금만 불리해져도 복구가 안 되는 상황이 됐어요. 끊임없이 말렸어요. 악순환이 반복되니까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죠. 심리적 요인이 컸고, 연습으로 극복하려고 해도 몸이 안 따라오고. 내 장점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많이 위축됐죠."
부진을 떨쳐내고자 했던 노력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스스로를 좀먹는 괴물로 변해갔다. 결국 강찬용은 리셋 버튼을 눌렀다. 2014년 말, 베테랑 미드 라이너가 아닌 신입 정글러로 변신한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모두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포지션을 변경했어요. 내가 몇 년 후에도 '미드'에서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는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정글러는 자신있었어요. 생각을 많이 하는 제 스타일과 잘 맞을 것 같았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포지션 변경이 필요할 것 같았죠."
정글러로 2015 시즌을 보낸 강찬용은 LoL 챔피언스 코리아 2015 스프링과 서머에서 3위를 기록했다. 준수한 성적이었지만 만족스럽진 않았다. 강찬용은 "팀 분위기가 처음엔 좋았는데 어느 순간 서로 믿음이 떨어졌다"며 "팀 적인 한계가 개인 피지컬에도 영향을 끼쳐 악순환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2015년 말 삼성 갤럭시로 전격 이적하며 다시 한 번 변화를 꾀했다.
"제 미래를 위해서 결정한 이적이었어요. CJ 엔투스가 저랑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었고, 스스로에게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제가 프로 생활을 오래 했지만 CJ에만 있었잖아요. '내가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닐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적을 마음 먹었고, 이후에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고민하면 마음이 바뀔 것 같았거든요."
삼성과 강찬용의 호흡은 잘 맞았다. 삼성에겐 강찬용의 경험과 노련미가 필요했고, 강찬용은 신인 선수들의 열정과 초심을 보고 힘을 얻었다. 그리고 강찬용이 합류한 삼성은 근 2년 동안 엄청난 성장을 거뒀다. 강찬용은 동료들의 정신적 지주로 역할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서로 의지를 많이 하고, 스스로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장점인 것 같아요. 한 선수에게 슬럼프가 와도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신감이 문제다. 언제든지 잘 할 수 있다'고 말하거든요. 그만큼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돕죠. 제가 못 할 때도 그렇게 힘을 얻었고요."
◆강찬용의 두 번째 길, 결혼과 안정
강찬용은 자기방어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스트레스와 고민이 스스로를 말리게 하는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강찬용에게 심리적 안정감은 상당히 중요해 보였다. 그리고 이 심리적 안정감은 강찬용의 두 번 째 길과 연결된다.
강찬용은 지난 4월 '버프걸 1기'로 활동했던 맹솔지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LoL 현직 선수 중 유일한 유부남이 된 것. 맹솔지씨를 언급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사랑꾼' 강찬용은 결혼 후 상당한 안정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결혼 후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많이 얻었어요. 제가 실력이 많이 떨어져 비난을 받고, 업계에서 소외당할 때도 제 노력을 알아주고, 제 편을 들어줄 사람이 생긴거잖아요. 또 그 사람이 여자친구일 때와 와이프일 때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진짜 가족이 된 것이니까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음이 많이 안정됐어요. 또 '이번에 잘 해서 집을 사줄거야, 무엇을 사줄거야'라고 생각하니까 동기부여도 되고요."
사실 프로 게이머가 공개적으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간섭할 수 없는 사생활임에도, 기량이 떨어졌을 때 가장 먼저 비난의 근거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강찬용은 이 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상해요. 제가 제 인생을 사는 건데,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그런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아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긴 했어요. 기왕이면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부러움도 받고 싶고, 축하도 받고 싶고요. 제 결혼을 축복받고 싶어서 '더 잘해야지'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오히려 강찬용은 결혼 이후 더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꿈에 그리던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2017에서 우승한 것이다. 이런 호성적은 프로 게이머와 배우자의 역할을 잘 조율한 강찬용의 노력과 맹솔지씨의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와이프가 이해해주는 것이 많아요. 어쨌든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활하지는 못하니까요.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서 더 잘해주려고 해요."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연습량이 부족하면 절대 잘 할 수 없는 엄청난 경쟁 속에서 일도 열심히, 사랑도 열심히 해야하니까요. 둘 다 시간이 무조건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전 다른 사람들이 10시간 해서 얻을 것을 5시간 만에 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연습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뭘 해야 이길까'를 꾸준히 고민하고요. 웬만하면 잠도 최대한 줄여셔 시간을 많이 쓰려고 해요."
결혼은 분명히 플러스 요인이 됐지만, 강찬용은 결혼과 일을 분리해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무대 위에서의 강찬용은 그저 '앰비션'이기 때문이다.
◆강찬용의 세 번째 길, 롤드컵과 꿈
강찬용은 이전 데일리e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롤드컵을 '결함'이라고 표현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강찬용이 단 하나 이루지 못한 것이 '롤드컵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찬용은 롤드컵 2017에서 꿈에 그리던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3세트 넥서스가 파괴되던 순간, 강찬용의 가슴에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우승한 순간, 넥서스를 깼을 때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것이 뭔지 느꼈던 것 같아요. 전기가 찌릿하더라고요. 우리가 정말 우승한 것이 맞나는 생각도 하고요. 그런데 끝나고 보니 또 허무해요. 이렇게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한순간에 끝난 것 같아서요. 막상 다음 날이 되니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고요. 그래도 준우승을 했다면 슬프고 미련이 남았을텐데, 그 감정들이 없으니 행복해요."
"롤드컵을 오랫동안 못 가면서 '게이머 생활이 끝나기 전에 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연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요. 와이프가 '분명히 갈 수 있을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응원해줬었죠. 그런데 작년에 갔잖아요. 사실 진출할 것이란 예상을 못 했어요. 진출한 것만으로 목표의 90%는 이뤘다 싶었죠. 그런데 우승까지 해서…. 이젠 정말 남들이 말하는 베테랑이 된 것 같아요. 더이상 미련도 없고, 심리적으로도 편해졌어요."
롤드컵 우승이라는 결함을 메운 강찬용. 완전해진 그의 새로운 목표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자신이 LoL에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이젠 유지를 해야죠. 지금 갖고 있는 장점이랑 실력을 유지하면 롤드컵에서 한 번 더 우승할 수도 있고, 좋은 성적을 낼 것 같아서요. 롤드컵 기간 동안 게임에 대한 지식도 많이 얻었거든요. 우리가 쌓은 명성에 먹칠하지 않도록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요."
"저는 지금도 좋은 것 같아요. 지금 팬분들이 저를 기억해주시는 것에 대해 만족해요. 사고치지 않고 제 스타일대로 하다가 자연스럽게 은퇴를 할텐데 계속 지금처럼만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이라고 말하는 강찬용은 '앰빠따'라는 다소 자극적인 별명도 웃어 넘겼다.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던 별명이 몇 년 째 계속되는 것도 신기하다고. 강찬용은 "재미있는 느낌으로 쓰여서 만족스럽고, 어떻게 보면 잘 해서 붙은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강찬용이 걸어온 길을 천천히 돌아본 인터뷰가 끝났다. 인터뷰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상투적인 질문. 강찬용은 이에 대해 성실하게 대답했고, 그 마지막 말에서 강찬용을 이 곳까지 끌고 온 원동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이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희 팀이 전체적으로 많이 성숙해졌어요. 물론 올해도 많이 힘들겠지만, 우리가 잘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고, 서로를 믿으니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저보단 우리 팀이 진짜 잘 하거든요. 그래서 5명이 함께 2018 시즌을 맞게 된 것도 감사해요. 또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도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