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인이 속한 G2 e스포츠도 부산을 뜨겁게 달군 팀 가운데 하나다. 아프리카 프릭스와 플래시 울브즈가 16강 A조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가장 높다고 예상됐지만 G2는 순위 결정전을 통해 1번 시드였던 플래시 울브즈를 떨어뜨렸다. 1차 이변 만들기에 성공한 G2는 롤드컵 우승 확률 1순위였던 중국의 로얄 네버 기브업을 8강에서 만나 3대2로 승리하면서 전세계 리그 오브 레전드 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비록 4강에서 중국 인빅터스 게이밍을 만나 0대3으로 완패했지만 G2의 선전은 LoL 팬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와디드' 김배인은 G2의 이변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서포터를 맡고 있는 김배인은 G2에서 용병으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이어서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서울에서 열린 플레이-인 스테이지를 통과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김배인은 "부산이 고향이라 꼭 16강에 가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고 부산에서 우승 확률 1순위인 RNG를 탈락시켰다. 4강전을 치르기 위해 입장하는 과정에서 김배인은 태극기를 두르고 등장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롤드컵이 끝난 뒤 장기 휴가를 명받은 '부산 사나이' 김배인이 지스타 현장을 찾았고 데일리e스포츠가 만났다.
Q 지스타를 찾은 이유가 있나.
A 학생 때부터 11월이면 지스타 현장을 찾았다.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부산 사람들에게 '지스타에서 보자'는 말은 11월에 벡스코에서 만나자는 뜻으로 통하기도 한다.
Q 롤드컵을 마무리한 뒤 어떻게 지냈나.
A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4강까지 올라갔고 그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우승 후보인 로얄 네버 기브업을 잡아냈다. 휴가를 받아서 부산에서 계속 체류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알아봐주는 분들도 많이 늘었다.
Q 한 달 가까이 한국에서 대회를 치렀다. 힘들지는 않았나.
A 내 생애 가장 길었던 한 달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진행된 선발전부터 롤드컵 4강전까지 정말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서머 포스트 시즌에서 탈락한 뒤 우리 팀 선숟들이 1주일 정도 휴가를 받았는데 나는 집이 한국이라 오지 못했다. 그 기간에도 연습했고 유럽 선발전을 통과한 뒤에는 한국으로 넘어와서 또 다시 연습했다. 4강에서 탈락하고 난 뒤에는 '다 태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결승에 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나와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다는 생각에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Q 4강에서 선수들을 소개할 때 태극기를 두르고 나와서 화제를 모았다.
A 태극기를 두르고 나온 것이 이슈가 될 줄 정말 몰랐다. 여러 나라가 모여 있는 유럽에서 이 세리머니는 자주 나온다. 올해 스프링에서 우리 팀이 결승에 갔는데 그 때 나는 태극기를 구하지 못해서 이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 다른 선수들이 자기 나라 국기를 어깨에 두르고 나온 것이 정말 부러웠다. 8강까지는 너무나 바쁘게 달려와서 세리머니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지만 4강 경기를 치르기 하루 전에 생각이 나더라. 부랴부랴 태극기를 구했고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내 손에 태극기가 들어와서 경기 전에 두르고 나갔다. 만약 RNG를 꺾고 나서 태극기 세리머니를 했다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나도 뿌듯했다.
Q 롤드컵 4강이라는 성적에 대해서는 만족하나.
A 대부분의 사람들은 G2가 4강에 들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으니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팀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다들 눈물을 흘릴 정도로 분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프로 선수에게 만족스런 패배는 없다. 패배에 대해 만족한다면 프로로서의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롤드컵이 끝난 뒤 여러 팀들이 리빌딩에 들어갔다. 유럽에서 용병으로 뛰고 있는데 선배로서 용병으로 뛰고 싶어하는 선수들에게 조언한다면.
A 나는 한국에서도 유명하지 않았다.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무대에 서보지도 못했고 하부 리그인 챌린저스에서도 돋보이는 선수가 아니었다. 테스트 기회가 오면 닥치는대로 잡았고 유럽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도 테스트를 보기 위해 유럽까지 날아왔다. 내가 노력해서 한 단계씩 올라왔기 때문에 내가 서있는 자리에 대해 뿌듯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한국 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기에 여러 지역, 여러 팀들이 러브콜을 한다. 자기 실력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용병으로 합류하게 되면 그 팀에 녹아들어야 한다. '성적만 내면 용병으로서 내 역할은 다했다'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친구, 좋은 동료가 되어 팀의 일원이 되어야만 외국에서 용병으로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원래 영어를 잘하는 편인가.
A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꽤 했는데 고등학생 때 LoL을 접한 이후로는 소원해졌다. 내가 구사하는 영어는 생존 영어다. 유럽 팀에 입단했을 때 나는 통역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게임과 관련한 용어들은 어느 정도 알아 들을 수 있었고 직접 부딪치다 보니까 생활하는 데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올라왔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니까 향수병도 생기지 않더라.
Q 롤드컵 기간 내내 어머니가 응원하러 다니신 걸로 알고 있다.
A 고등학생 때 LoL을 배웠는데 속을 많이 썩였다.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PC방에 갔고 LoL 대회에 나기기도 했다. 부모님께서는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하셨는데 나는 LoL이 너무나 좋았기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부모님의 인식이 바뀌었던 시기는 자력으로 챌린저스 코리아에 들어갔을 때였다. 프로 선수로 뛰겠다고 했고 첫 성과가 나오자마자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셨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Q 4강까지 갔을 때에는 부모님도 뿌듯하셨을 것 같다.
A 어머니께서 일본 여행을 취소하시면서 광주까지 응원하러 오셨다. 우리 팀이 4강까지 갈 것이라고는 부모님조차 예상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웃음).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네가 즐거운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즐기는 과정에서 결과도 잘 나와서 나도 좋았다.
Q 부모님을 유럽으로 초청한 적은 있나.
A 아직 그러지는 못했다. 우리 팀이 올해 유럽 LCS 스프링 결승전에 진출했는데 그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생전 처음으로 결승전 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우리 아이디와 이름을 불러주면서 환호하더라. 1만 명 앞에서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는데 전폭적으로 응원해줘서 LoL 선수하기를 잘했다라는 자부심이 들더라. 2019년에 결승전에 꼭 진출해서 부모님을 초청하고 싶다.
Q 롤드컵 결승 무대에 섰다면 더욱 감동 받았을 것 같다.
A 그날 롤드컵 결승전을 현장에서 봤다. 인빅터스 게이밍의 우승이 확정된 뒤 '루키' 송의진이 인터뷰하는 와중에 눈물을 흘렸는데 나도 모르게 울고 있더라. 용병으로서 저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너 힘들었을까 공감이 됐고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었고 우승 멘트를 하고 싶었다라는 생각에 시샘을 하면서 눈물이 나더라.
Q 용병 생활이 그렇게 어려운가.
A 외국에서 선수로 활동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나는 LoL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너무나 힘들었다. PC방 대회를 나가기 시작하다가 라이징 스타 게이밍이라는 팀을 직접 만들었고 선수들을 직접 영입했다. 선수이자 감독이기도 했고 시간이 날 때면 후원사를 구하러 직접 다녔고 연습실과 숙소도 직접 구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때 그렇게 뛰어다녔다. 유럽으로 가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솔로 랭크 점수가 낮았기 때문에 러브콜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유럽 팀이 테스트를 한다고 해서 직접 날아가기도 했다.
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배인이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구나"라면서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라고 이야기하더라. 롤드컵 4강 진출을 통해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 들긴 한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 있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곧바로 "절대로 없다"라고 답할 것이다. 선수로서 경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
Q 한국에서 러브콜이 온다면 뛸 생각이 있나.
A 당연하다. 이번 롤드컵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LCK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리그다. LCK에서 뛸 기회를 얻는 것은 모든 LoL 프로 선수들의 꿈이다. LCK를 보면서 자라왔고 연구하고 공부했다. 한국인인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내가 좋은 서포터가 될 수 있는 팀, 내가 들어가서 팀워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팀으로부터 제의가 온다면 이적할 생각도 있다. 선수 생활이 끝나더라도 코치나 감독 등으로도 LCK 무대에서 뛰고 싶다.
Q 유럽은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되고 있다. 구도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A 우리 팀을 비롯해 프나틱, 바이탤리티 등 기존 5개 팀이 유지되고 다른 5개 팀은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프랜차이즈화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의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벽히 새로운 구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Q 만약 프로 선수를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 것 같은가.
A e스포츠 현장을 다닐 때마다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보니 e스포츠 업계에서 일했을 것 같다. 현장에서 호흡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방송 스태프나 기자 같은 직군에 있지 않았을까.
Q 2019년 각오를 들려 달라.
A 우승하겠다, 롤드컵에 나서겠다라는 결과에 대한 약속을 하기 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싶다. 재미있게, 즐기면서 경기를 준비하고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나가면서 만족스런 패배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G2가 원하는, 내가 원하는 결과들은 따라올 것 같다. 한국 팬들께서 많이 관심가져 주신다면 더욱 힘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