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펠리오스 하나로 이긴 T1
이번 경기에서 T1은 세 경기 연속 아펠리오스를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T1은 밴픽 단계에서 자르반4세를 세 번 모두 밴하며 아펠리오스를 배려한듯한 모습을 보였죠. 자신들이 설계한 전술이 벽을 넘어 다니면서 초반에 강력한 자르반4세의 갱킹에 취약할 수 있고 중반 이후에는 혹시 모를 난전을 방지한 거로 보입니다.
오늘 두 팀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아펠리오스의 활용과 대처에 있었습니다. 아펠리오스는 다른 원거리 딜러 챔피언들과 스킬 메커니즘이 매우 다른데요. 아펠리오스는 다섯 가지 무기의 사용 횟수 제한이 있다보니 상황에 맞게 무기를 미리 준비하고 순서를 세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구마유시' 이민형은 아펠리오스를 가장 잘 다루는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2020년 솔로 랭크와 롤드컵 전까지 리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챔피언이 아펠리오스입니다.
△ 같은 패턴의 1, 2경기
T1은 1, 2세트서 같은 패턴으로 초반에 이득을 보고 시작했습니다. 그 핵심은 ‘전령 타이밍(8분)에 맞춰 바텀 듀오가 상체로 올라가기’였습니다. 이것을 큰 틀에서 보자면 아래 순서와 같습니다.
① 7분경 미드-바텀 사이에 2~3개의 제어 와드를 투자하여 시야 확보하기
② 안전한 시야를 바탕으로 아펠리오스의 대포 미니언 라인 선푸쉬
③ 대포 웨이브를 밀고 7분 20초경 귀환하여 서폿과 함께 상체 로밍
④ 전령 타이밍 때 상대 바텀 듀오보다 먼저 도착하여 유리한 포지션 선점
위 그림은 이번 매치 1, 2세트의 시간대별 미니맵인데요. 두 경기에서의 진영은 다르지만 7분대에 미드-바텀 사이의 시야를 밝히고 8분에 맞춰 바텀 듀오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 보이실 겁니다. 여기서 구마유시의 디테일을 좀 더 짚어보겠습니다.
△ '구마유시'의 무기 관리 능력
1, 2세트서 전령 타이밍 때 '구마유시'는 아펠리오스의 무기를 근접 전투와 포탑 채굴에 가장 좋은 반월검+절단검으로 세팅해서 도착했습니다.
아펠리오스의 무기 메커니즘은 위 그림의 첫 줄에 무기 순서를 기본으로 순환하는 방식입니다. 무기 교환을 통해 절단검을 가장 처음 소모한다면 다음 순환 시 절단검이 가장 먼저 오게 됩니다. 전령 전투에 가려고 마음먹은 1, 2경기에서는 절단검을 먼저 소비했고 상대가 올라프를 선택한 3경기에서는 만월총을 먼저 소비했습니다.
중력포+화염포를 사용해 서포터와 협력한 1세트의 경우 3-3 대포 웨이브(5분 40초), 2세트의 경우 2-3 대포 웨이브(4분 10초)를 밀어넣은 뒤 처음으로 귀환해 정비했습니다. 첫 정비 후 4-3 대포 웨이브(7분 10초)를 먼저 밀고 반월검+절단검을 준비해 상대 바텀보다 먼저 상체로 가게 됩니다.
초반 이득을 본 구마유시는 언제나 그렇듯 중반 이후 한 타에서도 탄약 관리를 철저히 하며 3세트서는 MVP로 뽑히게 됩니다.
△ '케리아' 류민석과의 호흡
아펠리오스의 무기 관리는 서포터가 도와줘야 수월합니다. 라인을 밀어야 하는데 현재 무기가 부족할 경우 미니언을 같이 쳐준다거나 아펠리오스가 편하게 라인을 밀 수 있도록 시야를 잘 잡아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펠리오스의 Q 스킬은 사용 시 무기 탄약이 10개씩 소비됩니다. 만약 서포터나 팀의 도움이 없다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Q 스킬을 쓰거나 더 많은 탄약을 소비하기 때문에 무기 관리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케리아'가 상황에 맞춰 라인 푸쉬, 시야 잡기 등 상황에 맞게 플레이해줬기에 '구마유시'가 상당히 편하게 전령 타이밍에 맞춰 무기 세팅을 할 수 있었습니다.
△ T1의 정교함, 부족했던 한화생명
T1이 아펠리오스를 사용해 상체로 먼저 달리는 방식이 이번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그룹 스테이지 에드워드 게이밍(EDG)과의 경기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한화생명은 1경기에서 T1 바텀의 빠른 로밍을 몰랐던 듯 텔레포트가 없는 '모건' 박기태의 이렐리아가 잡히면서 너무 큰 손해를 보고 시작했습니다.
2세트서는 1세트 패턴을 인식한 듯 전령 전투 타이밍에 강한 챔피언들을 골랐습니다. 그렇지만 레넥톤의 강한 타이밍임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죠. '구마유시'가 솔방울을 터트려 레넥톤이 진입할 수단을 없앴고, T1이 오히려 득점하면서 경기는 일방적으로 흘러갔습니다.
△ 상대의 노림수를 흘려버리는 T1
두 경기 연속 같은 패턴에 패배한 한화생명은 초반에 힘을 줄 수 있는 올라프 정글을 선택했습니다. T1은 여기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아닌 공격을 흘려보내는 현명함을 보여줍니다.
'페이커' 이상혁, '오너' 문현준, '케리아'는 제어 와드 3개를 상대 정글에 설치했지만 올라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올라프가 상체로 갔거나 바텀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한화생명의 바텀 듀오가 곧바로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고 올라프가 전령에 있다고 확신하고 바텀 압박을 하게 됩니다. 상대 팀의 노림수를 흘리는 전술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잘 할 수 있는 플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늘 T1의 여유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밴픽
이전 메타 점검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많은 전문가와 팬들이 모두 한화생명의 챔피언 폭 체급 등의 이유로 한화생명이 여러 면에서 밴픽적으로 이기기 어려워보인다고 평가했죠. 이번 경기에 대한 밴픽 평가나 경기 결과도 예측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2경기에서는 T1의 뽀삐 정글이 나왔는데도 돌진기를 가진 노틸러스와 레넥톤을 이어서 뽑는 모습도 나오게 됩니다. 이번에는 밴픽에서 나온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겠습니다.
△ 이렐리아, 신짜오 그리고 바루스
1세트서는 '모건'의 이렐리아가 나왔습니다. RNG와의 경기에서 너무 크게 터져 나오지 않을 거로 예상됐지만 다시 한번 용기를 갖고 선택했습니다. 그렇지만 T1 바텀의 빠른 움직임에 의해 빛을 못 봤죠. 아직은 경험치가 더 필요한 모습이었습니다.
1, 2세트서 한화생명은 정글 신짜오를 선택했습니다. 신짜오의 장점은 초반 강한 전투 능력을 바탕으로 스노우볼을 굴리는 것입니다. '윌러' 김정현의 신짜오는 오너보다 좀 더 라인을 봐줬지만 T1이 단단하게 플레이하며 정글 동선 손해까지 입게 됩니다. 이것 역시 T1의 빠른 움직임에 별 재미를 못 봤고 3세트서는 올라프로 교체하게 됩니다.
바루스는 롤드컵까지 4연속 너프를 당하며 일반적인 티어 구분에서는 많이 내려온 챔피언입니다. 신짜오는 3세트서 올라프로 교체해줬지만, 바루스는 2세트부터 나온 걸 보면 전령 타이밍의 팀 전력을 올리면서 강제 이니시에이팅 스킬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로 보입니다. 문제는 T1이 3세트서는 전령은 신경 쓰지도 않고 바텀을 공략하면서 바루스의 힘이 금방 빠지게 됩니다.
△ 안티 캐리 역할을 선택한 '페이커'
우리는 많은 대회에서 상대 팀의 에이스 선수를 오른, 말자하와 같은 챔피언으로 버티며 에이스가 날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봤는데요. 한화생명의 최대 강점은 '쵸비가 미드다'라며 많은 이가 말하고 있죠.
이번 매치에서 '페이커'는 본인이 칼 대 칼로 붙는 것이 아닌 '쵸비'가 날뛰지 못하도록 안티 캐리형 플레이를 선택했습니다. 조이를 보고 오리아나를, 르블랑을 보고 리산드라를 선택했죠. 인게임 플레이 역시 무리해서 킬을 내는 것보다는 최대한 '쵸비'의 공격을 본인이 흡수해주고 쵸비의 점멸만 쓰게 만드는 정도의 단단한 플레이를 했습니다.
게다가 '케리아'가 필요할 때 미드 로밍을 와줘 '쵸비'의 점멸을 빼주는 등 '페이커'가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그리고 '쵸비'가 묶여 있는 사이 경기는 나머지 라이너들에 의해 이미 불리해져 있었습니다. 예전에 '캐리' 역할을 맡았던 '페이커'의 모습에서 더욱 성숙해진(?)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는 팀원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 유미
T1은 ‘나는 유미를 쓸 수 있고, 카운터 칠 수도 있고, 없이 해도 상관없어’라고 한다면, 한화생명은 ‘우리는 잘 못 쓰는데, 상대방이 쓰면 못 막을 거 같아’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차이는 결국 세 경기에서 모두 한화생명이 유미를 밴하며 밴 카드 하나를 손해 보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T1이 8강 승리를 통해 얻은 것
T1은 8강에서 사실상 추가 카드를 쓴 것이 없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위에 설명한 아펠리오스의 무기 관리를 통한 초반 전략만으로 3세트서 재미를 봤기에 4강에서 만날 팀은 아펠리오스에 대한 패턴만 좀 더 인지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3경기 밴픽에서는 레넥톤을 상대로 피오라를 뽑을 것 같은 모습도 보여줬는데요. 이런 것 하나하나가 앞으로 만날 팀들에게는 신경 쓰일 대목입니다.
카드 사용이 전술적인 이득이라면 '페이커'가 안티 캐리 역할을 하더라도 팀원들이 충분히 잘해줄 수 있다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가장 큰 소득이고 봅니다. 물론 담원 기아와 4강서 붙는다면 좀 더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감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죠.
오늘은 T1과 한화생명의 8강전에서 나온 핵심을 짚어봤는데요. 아펠리오스가 비교적 최근 (2019년)에 나온 챔피언이라 독자분들을 위하여 스킬 설명까지 추가했습니다. 남은 LCK 팀들이 모두 4강에 올라오길 기대하며 다음 시간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데일리e스포츠는 2021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서 '조이럭' 윤덕진 e스포츠 데이터 분석 전문 기업 ‘게임아이(GameEye)’ 대표가 참여한 기획 기사를 제공합니다.
윤덕진 대표는 리그 해설, 분석가, 코치, 에버8 위너스 대표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부트캠프, 선수이적,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활동 중입니다. 현재 AI 석박사 연구진과 함께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반 롤 전적검색 서비스 '딥롤 (deeplol.gg)'을 베타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으며, e스포츠 데이터 분석 플랫폼 '딥롤프로(pro.deeplol.gg)'를 통해 국내외 팀들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김용우 기자 (kenz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