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나진의 미드를 책임졌던 '훈' 김남훈. '국대 라이즈'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국내 라이즈 최고수였던 김남훈은 아직도 많은 팬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선수와 지도자를 거쳐 현재 김남훈은 지지큐컴퍼니에서 제작하는 AI 코칭 영상에 자신의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김남훈을 지난 3일 지지큐컴퍼니 사옥에서 만나 선수, 지도자 시절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페이커'가 존경한 남자, '훈'
최근 e스포츠는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정식 종목이었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지나 한국에서 열렸던 LoL 월드 챔피언십이 뜨거운 인기를 누리며 다양한 매체에서 앞다퉈 e스포츠를 다루고 있다. 고척 스카이돔에서 많은 관중과 함께 치러졌던 이번 월즈 결승전은 기성 스포츠를 방불케 하는 열기를 뿜어냈다. 2012년 겨울, 용산 e스포츠 경기장에서 LoL 인비테이셔널을 치르던 시절 김남훈은 이런 그림을 예상했을까.
김남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고 많이 플레이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실 'LoL'이 '스타크래프트'보다 잘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며 "그때 당시 저는 개인적으로 한 5년 정도 봤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크게 될 줄은 전혀 상상을 못 하긴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성장한 LoL e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하는 후배들을 보며 김남훈은 개인적인 아쉬움도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저는 군대를 다녀오고 프로게이머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아쉬움은 좀 더 어렸을 때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많이 들긴 했다"며 "저도 19살, 20살 때 선수로 데뷔했으면 좀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김남훈은 여전히 선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문득 느끼지만, 아직도 많은 팬이 기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최고의 스타인 '페이커' 이상혁이 존경심을 보였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해 묻자, 김남훈은 "선수 할 때 딱 한 시즌이 겹쳤던 것 같다. 인성 교육 때였던 것 같은데, 당시에 '페이커' 선수가 와서 팬이었다면서 악수를 청했던 게 기억이 있다.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이어서 "또 당시 경기장에서 '페이커' 선수가 먼저 경기를 치르고 그다음이 제 경기였는데 응원한다고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다"며 "이후에 지도자 생활할 때 저를 존경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라긴 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솔직히 그 부분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이 저를 더 좋게 봐주는 것 같긴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선수 은퇴…후회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 초기 한국 LoL e스포츠는 MiG와 EDG, 두 클랜이 양분했다. EDG의 경우에는 빠르게 나진으로부터 스폰서를 받으면서 롤챔스 원년부터 프로팀으로서 대회를 치렀다. 그러나 라이벌이었던 MiG가 형제 내전 결승을 만들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결승 무대를 밟는 동안 나진은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당시 상황에 관해 묻자, 김남훈은 "아마추어 때는 부담도 없었고, 각자 즐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진에서 스폰서를 받으면서 대우도 괜찮게 받다 보니까 조금은 느슨해진 것도 있다. 그리고 플레이할 때 더 조심스럽게 했던 것 같다. 저도 아마추어 때는 공격적으로 했다. 그때는 부담도 없었고 승패에 대한 생각 없이 그냥 즐겼다"며 "그런데 이제 팀에 들어가고 팀장도 맡으면서 더 잘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스크림 때는 적극적으로 하면서도, 대회만 가면 방어적인 플레이가 나왔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쉽고 또 아무래도 연습할 때 대우를 잘 받다 보니까 스스로 거기에 만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라고 털어놨다.
이후 나진을 떠나 진에어 그린윙즈에 합류했던 김남훈은 조금씩 예전의 폼을 회복하면서 다시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4년 1월 은퇴를 선언하고 팀을 떠났다. 이후 '강퀴' 강승현, '헤르메스' 김강환 등과 아마추어팀을 꾸리기도 했지만, 프로게이머 생활을 더 이상 이어가지는 않았다.
은퇴에 관해 묻자, 김남훈은 "일단 진에어에서 계속할 수 없었던 게 제일 컸다. 그리고 괜찮게 하고는 있었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선수를 더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겠다고 판단했다"며 "당시 팀을 떠나는 것으로 돼 있던 친구들 사이에서 방송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서 방송하면서도 팀을 구할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선수를 그만뒀다. 후회는 없다. 그때 당시로 돌아가도 똑같이 선택했을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많은 것을 배웠던 지도자 시절
선수 은퇴 후 김남훈은 2014년 연말부터 LPL의 팀 WE 코치로 들어갔다. 김남훈은 중국 진출 배경에 대해 "원래는 진에어에서 선수를 하고 그다음에 코치할 생각이 있으면 그렇게 하기로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잘 안 맞았다"며 "이후에 방송을 하다가 팀 WE에서 먼저 제안을 줬다"고 설명했다.
2015년부터 LPL 무대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김남훈은 초반에는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갔을 때는 중국 선수들이 제가 누군지를 모르니까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네가 뭔데 우리를 가르치지' 같은 분위기가 있다 보니까 저도 처음 1년 동안에는 솔로 랭크를 열심히 했다"며 "그러면서 챌린저를 유지했고, 솔로 랭크에서 직접 선수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난 여전히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고 너희를 알려줄 수 있는 실력이 된다'에 대한 신뢰를 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까 중국 선수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힘든 시기를 거친 김남훈은 서서히 팀에 적응해 갔고, 감독을 맡았던 2017년에는 LPL 스프링 우승에도 성공했다. 그는 "처음에 1년간 코치를 할 때는 저도 누구에게 배운 거 없이 맨바닥에 헤딩했다. 그때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성적을 못 냈다"며 "그래서 당연히 같이 더 안 할 줄 알고 있었는데, 팀에서 다행히 좋게 봐주면서 선수단 구성 등에 대한 권한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월즈 선발전까지 가고 성적도 잘 나오다 보니까 성장하는 것이 느껴져서 기분 좋았다. 17년도에는 스프링 우승하고 월즈 4강에 오르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뿌듯함을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김남훈은 팀 WE를 나와 비시 게이밍, VSG, 로그 워리어즈 등을 거치며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지만, 2017년과 같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김남훈은 많은 것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제가 점점 잘해지고 나서 WE서 더 할 수 있었는데 안 하고 다른 팀을 가서 잘 안됐다. 잘하고 있을 때 겸손해야 하고 자만하지 않아야 하는데, 당시에는 제가 어느 팀을 가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이 강해졌다. 그래서 느꼈던 거는 잘할 때는 좀 겸손하고 할 수 있을 때 더 오래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AI 코칭 영상 제작…재밌게 하고 있죠"
2020년을 끝으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김남훈은 팀을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LoL을 떠나 평범한 일을 하며 지냈지만, 안 하던 일에 재미를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다시 LoL 쪽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AI 코칭이라는 키워드에 흥미를 느끼고 지금의 지지큐컴퍼니에 입사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지지큐컴퍼니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인 GGQ의 AI 코칭 영상에 자신의 인사이트를 제공하며 돕고 있다.
김남훈은 현재 하는 일에 대해 "AI 코칭 영상을 만들 때 거기에 들어갈 장면에 인사이트를 주고 같이 개발자들과 논의한다. 그래서 실제로 영상을 자동으로 뽑았을 때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인사이트와 맞는 영상이 나오는지 검증하고 테스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데스크탑에 들어가 있는 밴픽이나 카운터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화 했을 때 설득력이 있는지, 실제로 이 데이터로 했을 때 충분히 이용자가 납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을 진행하고 반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남훈은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재밌다. 제일 재밌는 거는 저조차도 원래는 데이터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는데, 데이터화를 했을 때 나오는 결과와 제 생각이 일치하는 경우가 있을 때가 있다. 그때가 정말 재밌다"며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해서 나온 데이터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렇게 신기해하기도 하고, 재밌게 회사 다니고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김남훈과의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기 몇 주 전. 우연히 다른 인터뷰 자리에서 김남훈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찍혔던 사진으로 인해 김남훈은 다시금 팬들의 기억에서 소환되며 화제를 낳았다. 그는 "저를 기억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 너무 감사하다"며 여전히 많은 관심을 주는 팬들에게 인사를 먼저 전했다.
이어서 그는 "지금 GGQ 프로그램이 서비스 중이고, 이용자도 생각보다 많고, 호응이 좋다. 그래도 AI 회사로서 코칭 영상이 더 업데이트되고 좋은 영상을 이용자가 많이 사용할 수 있게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좋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이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강윤식 기자 (skywalker@dailyesports.com)